그림 '굽는' 남자… 불이 빚은 色, 가슴을 울린다

    입력 : 2010.05.18 02:48

    도예작가 신상호展

    자신의 장흥 스튜디오에서 작품 앞에 선 신상호. /손정미 기자
    신록의 향연이 펼쳐진 지난 13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도예작가 신상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홍익대 미대 학장까지 지낸 그는 2008년 학교를 그만두고 장흥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스튜디오 안과 바깥 뜰에는 오는 22일부터 시작되는 개인전에 나올 대형 작품들이 마지막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가 2002년 시작한 'Fired Painting(구운 그림)' 대작들이었다. 흙으로 만든 판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뒤 1250도의 고열(高熱)에서 4번 이상 구워낸 도판화(陶版畵)로, 유약과 불이 빚어낸 색은 깊고 투명했다. 유화로 그린 추상화 같은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전통 보자기에서 나온 색과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신상호의 '구운 그림'은 화려하면서도 내면을 울린다.

    도예작가 신상호의〈Wrapping-Future City(2010)〉. 흙판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뒤 고온에 구워내 깊고 맑은 색을 표현한‘불에 구운 그림(Fired Painting)’이다. /부띠크모나코미술관 제공
    신상호는 1970년대 분청사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홍익대 교수 시절인 1980년대 미국에 교환교수로 머물면서 흙으로 빚는 조각에 관심을 돌렸다. 이후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원초적 창조성과 생명력에 매료됐고,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얻어 흙으로 거대한 동물 형상을 빚어 전시를 열었다. 이 전시회에 나온 불완전한 동물 형상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했다. 도전과 실험을 거듭해온 신상호는 2000년대부터 '구운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06년 개관한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초대관장을 맡았던 신상호는 '클레이아크'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해왔다. '클레이아크'는 흙(Clay)과 건축(Architecture)을 결합한 말로, '건축도자'를 말한다. 예를 들면 흙으로 구운 타일을 건축에 사용해 건축물 자체가 예술품으로 빛나게 한다는 것이다. 클레이아크의 하나인 '구운 그림'은 2008년 서울 강남에 들어선 삼성전자 건물 외벽과 광화문 금호아시아나 사옥 외벽에 각각 설치됐다.

    작가는 전통 도예에서 시작해 입체로, 그리고 다시 회화의 영역까지 경계를 계속 돌파해오고 있다. 그는 "'구운 그림'은 1000도 이상에서 구웠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열이나 자외선에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면서 "실내는 물론 건물 바깥에도 붙여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상호는 이번 전시에 나올 작품 제목을 〈Wrapping-Future City〉라고 붙여 건축물에 적극적으로 도입될 '구운 그림'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Fired Painting'을 비롯해, '아프리카의 꿈' 'Structure & Force'로 이뤄진다. '아프리카의 꿈'은 그가 아프리카에서 보고 느꼈던 아프리카의 생명력을 표현했다. 'Structure & Force'는 흙으로 빚은 입체물로, 동물의 다리는 네 개가 아니라 여러 개로 이뤄져 있다.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동물들이 힘껏 달리는 장관을 봤는데 어느 순간 다리의 움직임만 보였다"면서 "여러 개의 다리로 역동성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손으로 빚어 고온에서 구워낸 도예 작품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어 묘한 뉘앙스를 준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같이 여운이 길게 남는다. 전시는 6월 12일까지 서울 서초동 부띠크모나코미술관에서 열린다. (02)535-5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