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기자의 音담樂설] 90세에도 공연하는 어른들… 젊은 뮤지션들의 진정한 '아이돌'

'살아 있는 블루스의 전설' B B 킹(86)이 올 5월쯤 호주를 거쳐 첫 한국 무대에 오르려고 했으나 공연장 사정으로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60년 넘게 작곡과 연주를 해온 거목(巨木)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전무후무할 성싶은데 아쉬운 일이다.

B B 킹의 첫 녹음(1949년)을 데뷔로 치면 올해로 뮤지션 경력 62년이다. 미수(米壽)를 눈앞에 둔 이 고령의 연주자는 올해도 북미와 유럽, 호주 투어 일정을 빽빽하게 앞두고 있다. 그 기타가 전성기 때처럼 쨍쨍 울리긴 어려울 것이나 노익장(老益壯)만큼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노년의 왕성한 활동으로 따지면 B B 킹이 '형님'이라고 부를 사람이 여럿 있다. 80세이던 지난 2002년 처음 한국에 왔던 재즈 하모니카 주자 투츠 틸레망스는 현재 89세다. 역시 그의 홈페이지엔 올 4월 뉴욕 재즈클럽 '블루노트'에서의 엿새간 연속 공연을 비롯해 라이브 일정이 빼곡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기타로 이름난 재즈 뮤지션 레스 폴은 2009년 94세로 작고할 때까지 매주 수요일 뉴욕의 재즈클럽 '이리듐'에서 연주했다. 그가 91세이던 2006년 뉴욕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기타를 들 힘이 없어(깁슨 레스 폴 기타는 무겁기로 유명하다) 빈손으로 부축을 받으며 무대 중앙 의자에 앉았다. 연주가 완벽할 리 없었으나 91세 뮤지션이 스윙 리듬을 타고 퉁긴 현의 소리가 앰프를 통해 흘러나왔을 때 사운드뿐 아니라 감동도 증폭됐다.

이들에 비하면 한국의 노장(老匠)들은 아직 쌩쌩한 편이다. 신중현과 패티김은 73세 동갑이며, 이미자는 올해 70세다. 재즈계에도 강대관(78)·이동기(74)·김수열(72) 같은 뮤지션들이 수두룩하다. 한대수(63)·조용필(61)은 한참 아래다.

부디 한국 대중음악의 어른들도 90세가 되도록 꾸준히 무대에 서줬으면. 늘 그들을 찾는 관객이 있어 뮤지션 스스로 "내가 이 나이에 뭘…" 하고 은퇴를 재촉할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들의 음악을 접하고 나서 그 뒤를 따르는 젊은 뮤지션들에겐 이들이 진정한 '아이돌(idol)'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