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3.19 03:03 | 수정 : 2011.03.20 07:16

영어 회화 잘하고 싶다고? "말은 생각에서 나온다 영어로 읽고 쓰면 영어로 생각한다 그것이 말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매일매일 영작해보라 회화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질 테니"

“굶더라도 타임은 강의해야죠.”송재원씨는 1997년부터 타임 지를 빠짐없이 모으고 있다.‘ 올해의 인물’을 인터넷 앞에 앉 아 있는‘너(You)’로 선정했던 2006년 12월 25일자는 송씨가 가장 아끼는 타임지 중 하나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송재원씨는 일흔두 살의 학원강사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시사주간지 '타임(TIME)'을 강의한다. 대학 타임반 강의부터 치면 30년이 넘었다. 반골기질이 다분해 보이는 노(老)강사는 진지하게 말한다. "타임, 위대한 잡지죠. 세상의 거울이자 영어의 보고(寶庫)이지요."

하지만 타임 88주년을 맞이하는 송씨의 심경은 쓸쓸하다. 컬러TV, 인터넷, CNN 등과의 경쟁에서 점차 밀리기 시작한 타임의 운명처럼 타임 영어 역시 토익과 토플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타임 강의가 있는 학원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 서울 종로 YBM어학원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송 강사'의 타임 영어 수강생도 20명 안팎이다. 한 달 강사료가 5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임'을 놓지 않는 이유는 뭘까.

타임에서 '상대성이론'을 배웠다

―토익·토플 강사로도 얼마든지 전향,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타임만 고집하시나.

"토플도 잠깐 한 적 있다. 당시 유명했던 아카데미토플과 몇몇 교재를 가지고 내 방식으로 강의해서 돈도 제법 벌었지. 그런데 피폐해지더라. 무슨 무슨 입시를 위해, 합격을 위해 '찍기' 비결을 알려줘야 하니. 타임을 강의할 땐 그렇지 않았다. 단지 영어 때문이 아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창(窓) 아닌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나는 타임을 통해 제대로 배웠다. 베트남전의 진실도 타임을 통해 알았다. 내가 타임에 중독된 이유다."

―타임은 고급 영어이고, 그래서 어렵고, 실용적이지 않다고들 생각한다. 학원에서 밀려난 이유도 그 때문 아닐까.

"대학교수도 타임 가르치다 골병들 만큼 어렵다, 재미없다 하는데 그건 편견일 뿐이다. 어려운 영어도 있지만 중학교 수준의 쉬운 영어로 쓰인 기사도 있다. 최근에는 젊은 기자들이 구어체 영어를 구사해서 회화 실력 높이는 데 좋은 문장들이 많더라. 물론 처음엔 어렵겠지. 수강생 중에도 하루 듣고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숱하다. 그런데 3개월 버티면 내공이 생긴다. 타임의 참맛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1년을 넘기면 그야말로 중독자의 길로 들어선다. 씹을수록 맛이 나는 고기처럼 타임도 그렇다."

―웬만큼 영어를 할 줄 알아야 강의를 따라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문법이 중요하지. 그래서 나는 필요하면 중학교 문법도 가르친다."

―문법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벌써 재미없어지는 것 아닌가.

"'식당영어' 정도만 하고 싶으면 문법 할 필요 없다. 하지만 영어를 오래, 제대로 하려면 문법이 필수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6개월 집중해서 강좌 들으면 누구나 한다."

―그래도 말하기와 듣기가 영어 학습의 핵심으로 각광받는 요즘, 독해와 작문 위주인 타임 강의는 구식으로 느껴진다.

"말(言)은 생각에서 나온다. 영어로 읽고 쓰면 영어로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말이 되어 나온다. 매일매일 영작해봐라. 회화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질 테니."

내 '타임 제자' 중엔 전직 장관도 있다

―열댓 명 된다는 타임 수강생들 면면이 궁금하다.

"10대부터 70대까지 있다. 전직 장관도 있고, 청계천 복구한 일등공신도 있고, IMF 외환위기 때 은퇴한 CEO도 배우러 온다. 중학교 영어실력밖에 안 되던 목사님 한 분은 타임 강의로 영어 실력 높여 신학 박사학위도 따셨다. 20대부터 듣기 시작해 10년 넘은 수강생도 있다."

―전직 장관이 누구신가?

"김용진 전 과기처 장관이시다. 일개 학원강사인 나를 '스승의 날'이라고 수강생들과 함께 식사자리를 마련해 아랫목에 앉혀놓고 '차렷 경례'를 하시더라. 하하!"

―미국서 유학해서 강사보다 영어 잘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 왜 타임을 공부하러 올까.

"타임에는 시사는 물론 역사와 미래학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뉴스위크보다 문학, 철학, 역사에서 월등하다. 혼자서 읽으려면 지루하니 학원으로 나오시겠지. 공기업 기관장이었던 어떤 수강생은 그러더라. 고위층 모임에 나가 타임에서 읽었던 내용을 들려줬더니 '어디서 그런 고급 정보를 들었느냐'며 놀라워하기에 '나도 다 듣는 데가 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고."

―고려대 영문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고,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非)유학파이고.

"바다 건너라고는 제주도밖에 못 가봤다(웃음). 그래서 간혹 나를 테스트하는 수강생들이 있다. 독해나 잘하지 회화는 빵점인 줄 알고. 어떤 사람은 미국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묻는다. 유학 갔다 와야 영어 잘하나? 내 전공이 음성학이다."

―영어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중학교 땐 영어가 싫었다. 발음 엉망이라고 만날 지적받으니. 고등학교 갔는데 수학 공식처럼 영어 문법을 똑 떨어지게 설명해주는 선생님 만나서 재미를 붙였다."

유학 한번 가본 적 없는 '토종 강사'

―성균관대 약대에 다니다 고려대 영문과로 편입했다.

"그 시절엔 의대, 약대 나와야 돈 번다고 해서 공부만 좀 하면 그쪽으로 갔다. 한데 실험하고 화학방정식 풀고 하는 일이 내겐 고역이었다. 내 적성은 문학에 있었다."

―타임은 대학에 와서 접하게 된 건가?

"그런 셈이다. 고등학교 땐 '코리안 리퍼블릭'이라는 영자지를 즐겨 읽었는데 대학에 오니 너도나도 타임지를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더라. 처음엔 무슨 말인지 캄캄하더라. 오기로 안 보다가 대학 졸업 무렵부터 재미를 붙였다."

―타임 강의는 언제부터 한 건가.

"영문학 강사로 이 대학, 저 대학 강의하러 다니던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강의 후반에 20~30분씩 '타임' 강의를 했다. 타임에 올인해야겠다 생각한 건 1985년부터 2년간 서울대에서 강의할 때다. 그때 타임이 베트남전을 특집으로 다뤘는데, '이게 역사다'라는 감동에 휩싸여 타임 강의 분량을 늘리고 대학별 타임반 강의도 나가기 시작했다. 대학만 열댓 군데 됐다."

―타임 강사로 뛰기 전인 1970년대에는 동아TV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더라.

"일종의 해직기자다. 항일운동가였던 아버지를 닮아선지, 혈기 왕성했던 20대부터 반골 성향이 강했다. 데모도 많이 했고(웃음)."

―생계 차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기 시작한 건가.

"입에 풀칠하려고 죽기 살기로 번역도 엄청 했다. 박사 과정 밟으면서 밥줄도 끊기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과외를 해서 돈을 벌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학 입시 앞둔 아이들 영어 과외를 제법 큰돈을 받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집 아버지가 혼잣말로 '날강도 아닌가?' 하는 말을 듣고 나서 당장 그만뒀다. 모멸감에 죽고 싶더라."

한 달 강사료 50만원이 못 되지만…

―결국 교수는 되지 못했다.

"성덕여상에서 5년간 영어교사 했고, 나중에 원주 상지대에서 겸임교수 했다. 생계를 위해 정일학원 강사로 들어갔다가 시사영어학원(YBM)으로 옮긴 것이 지금까지다."

―학원 입장에서는 난방비도 안 나올 만큼 타임 강좌가 적자라던데.

"민영빈 회장께 감사드릴 뿐이다. 어렵지만 상징적으로 밀어주시는 것 같다. 타임이니까."

―한 달 강사료 50만원으로 어떻게 생업을 이어가시나.

"부끄럽지만 지인들, 제자들이 조금씩 도와주신다. 다행히 이번 달부터 수강생이 30명으로 크게 늘었다. 희망이 보인다."

―영어, 어떻게 공부해야 잘할 수 있나.

"우문우답일 수밖에 없다. 영어는 어렵다고 안 하면 평생 그 자리다. 절대 쉽게 배울 수 없는 종목이다. 타임 1년만 붙잡고 해라. 큰 물건 하나 건지게 될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타임 기사는 무엇일까?

"2006년 12월 25일 2007년 1월 1일자 통합본이다. 연례행사로 하는 '올해의 인물'을 타임지가 선정했는데, 주인공이 'You'였다. 표지에 독자의 얼굴이 비치게끔 거울종이가 붙어 있었고. 얼마나 기막힌 발상인가. 인터넷의 번창, 정보의 홍수 속에 개인 미디어가 활개를 치기 시작한 때였다. 흥미로운 것은 영원할 것 같던 인터넷의 위대함도 시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고급 정보, 세상을 정확하게 분석해내는 미디어가 다시 각광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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