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2.22 00:49

3·4공화국 여권 실세이던 길전식(吉典植·87) 전 의원이 21일 별세했다. 고인은 연희대학(현 연세대)을 졸업하고 육사(8기)에 들어가 방첩부대 정보처장 시절 5·16혁명에 참여, 중앙정보부 3국장, 공화당 원내부총무, 국회 상공위원장을 역임했다.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 내리 5선(6~10대)을 기록한 고인은 1971년 구(舊) 주류가 대거 퇴진한 '10·2 항명 파동'을 기점으로 당 운영의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공화당은 백남억·길재호·김성곤·김진만의 '4인 체제'가 권력을 독점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들을 견제하려 했다. 4인방은 김종필 총리와도 경쟁 관계였다. 10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들과 동조 의원 주도로, 4인방 견제에 앞장섰던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이 전격 통과되자 정국에 파장이 일었다. 여당 의원 최소 20명 이상이 해임 찬성표를 던졌다. 주도자로 지목된 길재호·김성곤 의원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정계를 떠났다.

고인은 이 사태 4개월 전 당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사태 후엔 청와대를 오가며 수습 역할을 맡게 됐다. 길재호·김성곤 의원과도 끈끈했던 고인은 "함께 고생하던 동지들인데…"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고인은 이후 8년간 공화당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당무·자금·공천을 주무르는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 치밀하면서도 구김 없는 성품으로 야당과 두루 교류했으며, 군(軍) 색채가 적은 인사로 평가됐다. 1979년 10·26 이후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최근까지 구 여권 모임인 민족중흥회 회장을 맡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과를 조명했다. 유족은 부인 유명숙씨와 두 딸. 빈소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장지 국립대전현충원. (02)2227-7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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