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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의 맛 세상] 선인장은 나바호족의 '身土不二' 음식이었다

입력 : 2012.04.18 23:01

수렵·채집으로 살아온 美 원주민, 사막에서 자생하는 선인장 섭취

수천 년 이런 식생활에 체질 적응
당뇨·고도비만으로 고생하는 건 전통 식생활 지키지 못한 결과
한국인,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나

김성윤 대중문화부 기자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몸과 땅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으로,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먹어야 우리 몸에 좋다는 말이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히 그렇겠지"라고 막연히 수긍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무조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믿어도 되는 걸까.

북미대륙의 사막지대에 사는 원주민(인디언)들은 당뇨·고도비만 등 현대 성인병이 심각하다. 특히 당뇨는 미국 나바호 원주민들과 멕시코 세리 원주민들의 3대 사망원인 중 하나이다. 그런데 불과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원주민들은 당뇨가 뭔지도 몰랐다. 매년 뱀에 물려 죽는 사람이 당뇨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고 할 정도였다. 도대체 지난 50년 동안 이들 원주민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미국 보건학자들은 원주민들이 당뇨에 유난히 취약한 원인을 한참 동안 찾지 못했다. 그때 음식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들이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다. '현대적·서구적 식단(食單)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원인은 아닐까.' 학자들은 북미 원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먹어온 전통식단을 조사했다. 사막지대에 사는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다양한 종류의 선인장을 섭취했다. 세리족은 프릭클리 페어(prickly pear) 등 22가지나 되는 선인장을 섭취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선인장은 건조한 사막에 적응해 살기 위해 끈끈한 섬유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이 점액질 세포는 물을 오랫동안 강력하게 붙들고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인 당분을 천천히 배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선인장뿐 아니라 사막에 사는 수십 가지 다른 식물들도 이 점액질을 가지고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미국 원주민들은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막지대라는 자연환경 속에 살면서 채집과 수렵으로 생존해왔다. 선인장 등 사막에 자생하는 식물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선인장에 포함된 점액질 세포가 인체에 들어가면 위와 장에서 음식물 소화와 당분 흡수를 늦춰주는 기능을 한다. 외부세계나 다른 문명과 멀리 떨어진 사막지대에서 수천년 이상 살아온 원주민들의 몸은 서서히 사막 식물로 구성된 식단에 적응했다. 이들 원주민들은 유럽이나 아시아는 물론 같은 북미대륙에 살지만 농사를 지어온 다른 지역의 원주민들은 갖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사막지대에 자신들의 몸을 최적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물과 당분을 쉽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구할 수 없는 사막에서 수분과 당분을 최대한 천천히 사용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면 생존에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막 환경에 적응한 몸은 현대사회에 반강제적으로 편입된 뒤에는 원주민들에게 약(藥)에서 독(毒)으로 변했다. 원주민들이 음식물을 구하는 수단은 수렵과 채집에서 '쇼핑' '구매'로 빠르게 변했다. 수퍼마켓이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으로 식단은 바뀌었지만, 수천년에 걸쳐 선인장 등 사막식물에 적응한 몸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당분이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지만, 이를 제때 적당히 배출하지 못해 당뇨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토불이 식단으로 돌아가면 건강도 돌아올까. 미국 유타주에 있는 국립건강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Fitness)에서 실험을 해봤다. 피마·파파고·호피·파이우트 부족 출신 당뇨환자 8명에게 열흘 동안 전통식단과 비슷한 당분을 천천히 배출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운동을 하도록 했다. 쉽게 말해서 원주민 조상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랬더니 열흘 만에 체중과 혈당수치가 크게 호전됐고, 원주민 스스로도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고 느꼈다. 호주 원주민들 역시 급격히 바뀐 식단으로 인해 성인병 문제가 심각했다. 그런데 이들도 1개월 동안 조상들처럼 유랑하며 채집한 음식을 먹도록 하자 혈당수치가 크게 떨어졌다.

서울 본디올 한의원 최철한 원장은 "사람은 자신이 거주하는 환경에 잘 적응한 곡식을 먹음으로써 그 환경에 더 잘 적응해 나갈 수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신토불이"라고 말한다. 선인장을 먹으며 몸을 이러한 식단에 적응시킨 것은 북미대륙 사막지역 원주민 나름의 신토불이였다. 요즘 미국 원주민들이 성인병으로 고생하는 건 신토불이를 지키지 못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인은 어떠한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 미국 원주민 못지않게 급격한 식단의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인들도 '신토불이'의 의미를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