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도전했다”

  • 글·김창우 편집장
  • 사진·염동우

입력 : 2012.05.30 00:56 | 수정 : 2012.05.30 14:45

Adventure | The man who became A Bird
20… 경비행기 조종 면허를 따기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할 최소 비행시간

▲권태원 씨가 평소 자신이 즐겨 타는 경비행기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겁낼 이유가 없습니다. 사고날 확률이 제로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습니다.”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게 무섭지 않느냐고 묻자 권태원(54·원레이저 대표) 씨는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지난 2009년 11월 경비행기 조정사 면허를 취득한 후 280시간가량의 비행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규정대로, 하라는 대로만 하면 절대로 위험에 빠질 상황을 만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따발총만큼이나 빠른 어투다. 그는 “이따금씩 경비행기 추락사고 소식을 듣게 되는데, 백이면 백 다 조종 미숙이나 규정 불이행에서 오는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40년 묵힌 꿈, 50대에 실현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권 씨는 농업이 주업인 동네에서 태어나 봄이면 씨 뿌리고, 가을이면 결실을 거둬들이는 농사 외에는 본 것이 없는 이였다. 적어도 지상에서는 그랬다. 그런 그에게 이따금씩 동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는 유일한 볼거리였다. 때문인지 그는 어려서 조종사의 꿈을 꾸며 공군사관학교나 한국항공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 형편과 현실은 그를 꿈과 떨어뜨려놓았다.

젊어서는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7년간 흠뻑 땀을 흘렸고 귀국 후에는 기계회사에 취직했다. 능숙한 일본어를 특기로 일본 회사와의 협상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둔 덕분에 1997년에는 반월공단에 지금의 회사를 세우기에 이른다. 대표가 된 후 회사가 자리를 잡기까지 그는 “저 사람 직원이야, 대표야?”라는 물음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2007년 들어서는 다소간의 여유를 갖게 됐다. 이때부터 그는 어릴 적 꿈인 비행기 조종에 다가가 하나둘씩 착수, 실현하고 있다.

그는 집이 안산 시내인 데다 일터가 반월공단이어서, 평소 출퇴근 때면 시화호 바로 건너편에 계류돼 있는 경비행기를 수십 대씩 보아왔다. 때로는 경쾌한 엔진음을 자랑하듯 휭휭 날아다니는 경비행기를 보고 ‘나도 언젠가는…’ 하며 벼르고 벼렀다. 여건이 무르익자 그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시화호 비행장으로 건너가 교관과 면담 후 바로 수강신청을 했다.

▲인기 경비행기 BEST 3… 열정과 도전의 액티브 시니어라면 한번쯤 눈여겨볼 만 하다. 최근 도입된 기종 가운데 인기를 끌고 있는 2인승 경비행기 모델. /대한스포츠항공협회 제공
그러나 그가 하늘을 날기까지는 무려 2년 2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 축구로 30년 이상 다진 근육질의 그이지만, 비행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바람결을 읽는 센스는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시간의 교습과 5시간의 단독 비행 경력이면 면허 취득에 도전할 자격을 갖게 되는데, 그는 32시간의 교습이 끝나고야 간신히 면허 취득에 도전할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여기에 온통 영어와 일본어로 되어있는 비행용어도 생소하기 이를 데 없어 이를 암기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부딪힐 용기만 있다면 영원한 청춘

어렵사리 면허를 따낸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활주로로 달려가 비행하며 하늘을 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비행기를 조종하면 시야가 360도로 트입니다. 좌우는 물론, 위아래도 훤히 보이죠. 특히 단풍으로 물든 산 위를 비행할 때면 그 빼어난 경치에 반해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게 되죠.” 권 씨는 또 “지상에서 달릴 땐 신호등에 걸리고 주변 상황에 지장을 받아 멈추고 감속하기 일쑤지만 비행을 하면 이런 방해 요인 없이 시속 150~180㎞로 달릴 수 있어 타면 탈수록 깊숙한 매력에 빠져든다”고 했다.

권 씨는 딱 한 차례, 사고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회전할 때 최소한 15도 이상은 비행체를 기울이지 말아야 하는데, 빨리 돌리고 싶은 욕심에 이 주의를 잠시
무시하고 각도를 더 깊숙하게 기울인 게 문제였죠. 비행체가 갑자기 실속(失速)하면서 앙력이 급강해 추락할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가까스로 앙력을 회복시켜 추락을 면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권 씨는 이 위기를 겪은 후 안전비행을 되뇌고 있다면서 추력, 항력, 앙력, 중력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각종 계기 사용법은 몸에 배어 있을 정도가 되어야 조종사라고 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는 경비행기 조종 면허소지자가 3000여 명에 이르는데, 아직 번듯한 전용 활주로와 계류장을 갖추지 못해 이곳저곳 옮겨다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런 여건이 성숙되면 항공레저스포츠 동호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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