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16] 되살아난 우리 전통 술… 이젠 '酒道'도 되살릴 때

  • 허동현 경희대 교수·역사학

    입력 : 2012.07.12 23:30 | 수정 : 2012.07.12 23:38

    되찾은 '우리의 맛' - 쌀 막걸리 제조가 잠시 허용됐던 1977년, 텁텁하면서도 신맛·단맛이 어우러진 예전 막걸리 맛에 취해 술잔을 나누는 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가 양조법을 일본에 전한 백제 사람 수수보리(須須保利)의 행적을 적고 있을 만큼 우리 전통술의 역사는 유구하다. 쌀밥을 누룩으로 발효시켜 맑게 걸러 낸 약주와 남은 지게미에 물을 섞어 다시 거른 탁주(막걸리)를 즐기던 우리는 몽골로부터 증류법이 전해진 고려 말부터는 소주도 마셨다. 약주에 소주를 섞은 혼양주(混釀酒)가 등장한 조선시대에 우리 술 문화는 꽃을 피웠다. 이화주·혼돈주·백하주·호산춘·공덕지소주·안동소주·과하주·송순주·이강고…. 지방과 가문마다 특색 있는 명주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제는 나라와 함께 술 빚는 자유도 앗아갔다. 1907년 7월 통감부는 술을 과세 대상으로 삼는 '조선주세령(酒稅令)'을 발표해 면허받은 양조장만 술을 빚어 팔 수 있게 했다. 약주와 탁주·소주를 제외한 전래의 고급 술은 청주와 맥주에 밀려 사라져갔다.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조지훈의 '완화삼')"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박목월의 '나그네')" 향토색 짙은 시어(詩語)로 민족의 잃어버린 원형질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두 사람이 광복 이듬해에 주고받은 시구(詩句)에는 조선시대의 가양주(家釀酒) 전통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시인의 바람과 달리 전통술은 쇠퇴일로를 걸었다. 일제 주세 행정의 잔재와 입에 풀칠조차 어려웠던 가난 때문이었다. 1965년 1월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한 양곡관리법이 발효된 후 소주는 열대 고구마 타피오카를 원료로 만든 주정(酒精)에 물을 타 만드는 희석식으로 제한되었다. 막걸리도 밀가루로만 빚어야 했다.

    압축 성장 시대에 명맥이 끊겼던 전통주의 가치는 1988년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재발견되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문배주·이강주·백세주 등 옛 술들이 재현되었으며, 1990년에는 쌀막걸리와 증류식 소주도 되살아났다. 누구나 술을 빚어 마실 수 있게 규제가 풀린 1995년 이후 가양주 전통을 되살릴 불씨도 지펴졌고, 이제 맛과 질이 고급화한 다양한 막걸리가 일본에까지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되살려야 할 것은 전통주만이 아니다. 지나친 음주에 따른 주폭(酒暴)이 사회문제가 된 오늘, 조선시대 사람들의 절제된 음주 예법이 담긴 향음주례(鄕飮酒禮)가 거울로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