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22 22:57

'허시모는 명섭을 자긔집으로 다리고 가 집 압헤 잇는 복숭아 나무에 뒤짐을 지여 비트러 매이고, 염산이라는 독약을 붓에 찍어 빰에다가 도적(盜賊)이라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한 시간 동안이나 볏헤 말린 후에 풀어 노앗스니,…'

조선일보 1926년 6월 28일자는 사회면 머리기사로 미국 의료 선교사의 만행을 폭로했다. 지난해 여름 평안남도 평원군 순안면 남창리 순안병원 원장 허시모(許時模·28·C A Haysmer)가 병원 부속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 먹던 김명섭(12)이란 소년을 붙잡아, 얼굴에 글자를 새긴 '악독한 사형(私刑)'을 폭로한 것.

이 날짜 사회면 세평난인 '자명종'은 '아메리카에서 흑인에게 하든 못된 버르장이를 조선에까지 와서도 못고치는 가'라며 따졌고, 이튿날짜 1면 '촌철'난도 '불멸의 화(火)에 투(投)할 미국인 허시모의 악이여!'라며 비난했다.

어린이의 뺨에 글자를 새긴 혐의로 법정에 선 미국 의료 선교사 허시모(매일신보 1926년 7월 31일자).

사건이 알려지자 다른 신문도 일제히 '포악한 미 선교사' '만행 미인(米人)'의 행동을 성토했고, 현지 청년들이 장날 '배척 연설회'를 연 것을 필두로(6월 30일자) 평양 경성 목포 마산 등 전국으로 규탄대회가 확산되면서 반미 감정이 번져갔다. 경찰은 사법권 발동을 결의했고, 놀란 안식교회 지도자들은 "우리 잘못을 알음으로 전세계 인류 압헤 사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허시모도 피해자 가족에게 위자료를 합의하는 한편 신문에 사죄 광고를 냈다. '하바-드'대학에서 외과와 피부과를 전공한 경성 의사 최영재(崔永在)는 현지로 달려가 소년의 치료에 나서는 등 온 관심이 미국인의 만행에 쏠렸다(7월 3~8일자 등).

그런데 일본 낭인(浪人)과 친일조직인 상애회(相愛會)가 '일선융화'를 내세워 반미 감정에 기름을 붓는 '이상히 격분한 태도'로 전례 없는 행동을 취했다. 조선일보는 이에 1면 논설을 통해 '일대 민족적 해학(諧謔)'으로 '식자(識者)의 고소(苦笑)함을 금치 아니할 바'라 꼬집고, '반세기에 뻐치어 거의 전례가 업는 민족적 우정을 가지든' '미인은 의연히 선린(善隣)'이라고 주장했다(7월 8일자).

초미의 관심 속에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허시모에게 '(염산이 아닌) 초산은으로 전치 6개월의 상해를 입힌 죄'로 징역 3개월의 실형을, 판사는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했다(8월 6, 28일자 등). 검사가 불복, 상고심까지 갔으나 결국 집행유예가 확정돼 그해 12월 허시모는 귀국했다. 일본인의 과장된 분노를 '민족적 해학'이라고 꼬집은 것을 증명이나 하듯 '경남 마산시에 제2 허시모 사건'(7월 11일자) '부산에서 발생된 제2 허시모 사건'(8월 27일자) 같은 일본인에 의한 어린이 학대와 만행은 꼬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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