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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NARA(국립문서기록관리청)서 5년간 6·25 자료 찾는 한국 장교

입력 : 2012.11.06 03:02 / 수정 : 2012.11.06 13:20

국방부 한국문서 수집 요원에 발탁된 남보람 소령
문서 100억장·사진 수천만장… 6·25 자료만 골라 찾는 일 "수십년 된 보물상자 여는 기분"
"미국, 北 남침 미리 알았으나 판단 오류로 못 막았더군요"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은 전 세계 근·현대 자료의 보고(寶庫)다. 1770년대 노예 선박의 송장, 로키산맥에서 찍은 인디언 부족 사진, 나폴레옹 서명이 들어간 서류부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기록물과 일본 항복 문서까지 미국이 모은 자료가 보관돼 있다. 문서 100억장, 지도·도면 1200만장, 항공사진 2400만장, 영상필름 30만개, 화상 및 녹음기록 40만개, 전자 데이터 133테라바이트(종이 문서로 565억장) 분량이다. 이 중에서 6·25전쟁 자료만 찾고 있는 한 명의 한국군 장교가 있다. 남보람 소령(38·학군 35기)이다.

남 소령은 지난달 26일 본지 인터뷰에서 "인천상륙작전과 관련된 한국군 문서만 1200만장 이상 NARA에 보관돼 있다"며 "연구원 10명이 평생을 바치면 어느 정도 자료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국방부 6·25사업단은 NARA에 소장된 한국 관련 비밀해제 문서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인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육·해·공군 장교 32명을 대상으로 선발 작업에 들어갔고, 남 소령이 최종 뽑혔다. 남 소령은 국방대에서 군사전략석사 과정을 수료했고, 미 합동참모대학에서 합동작전을 공부했다. 그는 "1950년대 미국 정치사 연구를 했고 육군본부 군사연구소에서 1년간 6·25 전쟁을 연구했던 이력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지난 9월 워싱턴에 파견된 남 소령은 향후 5년간 6개월 단위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자료를 수집·전달해야 한다. 한국군 자료뿐 아니라 전시에 노획한 북한·중국·러시아 자료를 살펴보는 것도 그의 임무다.

남보람 소령이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남보람 소령 제공
그는 자료를 찾아내는 과정을 "보물찾기"에 비유했다. NARA에 있는 모든 자료는 미국 중심으로 정리돼 있기 때문에 남 소령이 사전 연구를 통해 '보물 지도 그리듯' 한국 자료 중심으로 목록을 다시 만든다. 이를 사서에게 전달하면 보통 이튿날 박스째로 남 소령에게 자료가 전달된다. 남 소령은 "모두 원본자료인데 밀봉(密封) 후 한 번도 안 열어 본 것도 많다"며 "수십 년간 땅속에 묻혔던 보물상자를 매일 열어보는 기분"이라 했다.

그가 최근 발견한 브라우넬 위원회 보고서(1952년)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의 6·25 남침 가능성을 사전에 알았지만 정보 판단과 의사 결정이 효과적이지 못해 이를 막지 못했다. 비밀첩보부대인 '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처(KLO)' 일명 켈로부대의 전투 사실을 입증하는 작전 지시 문서와 그 부대에 소속됐던 약 3만명의 한국인 명단 중 일부도 확보했다.

2차대전 패전국인 독일은 이미 NARA에서 동독 등 독일 자료를 모두 찾아갔으며, 일본은 1980년대부터 일본 국립중앙도서관·방위성 직원 등 8~10명을 파견해 일본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을 한국은 남 소령 혼자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벽에 나와 다음 날 새벽에 집에 들어갈 때가 많다. 남 소령은 "제 자료를 기다리고 있을 한국 연구원들을 생각하면 한눈팔 틈이 없다"고 했다.

"미군이 기록한 한 문서에 '일본인은 교활하고 뒤통수를 친다' '한국인은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이다. 욱하는 성질이 있고 농담을 잘한다'고 기록돼 있더군요. 이런 걸 볼 수 있는 건 저만의 특권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