腦구조·痛症신경세포 사람과 달라 '자극 반응해도 고통 없다' 설명 많아 물고기에 벌침 놓았더니 아파해 게는 전기 자극 피하고 기억까지 뇌가 인식 못 해도 자극 반응은 분명 사람 위해서도 인도적 대우 필요해
이영완 산업부 과학팀장
하루가 멀다 하고 바람을 피우는 남편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는데 생각 없는 시어머니는 싱싱한 회가 먹고 싶다고 채근한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 4시, 횟집에 들른 그녀 앞에 살점은 사라지고 뼈만 남은 채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인다.
어젯밤 주방장이 손님들 앞에서 솜씨를 부렸는데, 아직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살아 있되 산 것이 아닌 삶. 그녀는 저 물고기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TV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다. 작가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청담동 며느리의 삶이 사실은 수족관에 갇혀 살이 발린 고통 속에 살아가는 물고기 신세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독일이라면 이런 장면은 절대 방송에 나갈 수 없다. 지난달 13일 발효된 독일의 수정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침팬지나 개,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물고기 역시 감각이 있는 척추동물이므로 비인간적 학대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따라서 물고기를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거나 고통을 주는 행위는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당장 낚시꾼들이 들고일어났다. 연구를 위해 물고기에게 손상을 입힐 수밖에 없는 과학자들도 반발했다. 물고기는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법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정말 물고기는 고통을 느낄 수 없을까.
국제통증연구협회는 고통 또는 통증(pain)을 '실제적 또는 잠재적 조직 손상에 따른 불쾌한 감각과 감정적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다분히 주관적이며 인간 중심의 표현이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는 한 결코 물고기의 감정 상태를 알 수 없다. 과학자들은 신경계를 통해 간접적 답을 찾고 있다.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의 물고기도 고통을 느낄까? 삽화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사람은 통각(痛覺)세포가 고통을 인지하면 전기 신호가 발생한다. 이것이 척추를 따라 대뇌 신피질로 가서 고통으로 인식된다. 지난해 말 미국 와이오밍대의 제임스 로즈 교수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어류와 어업' 저널 인터넷판에 "신경계 구조상 물고기는 사람과 같은 통각을 갖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상처나 염증이 생겼을 때 뜨겁고 아픈 통증은 신경계에서 'C섬유'가 전달한다. 로즈 교수는 "사람이 느끼는 통증은 대부분 C 섬유가 담당하는데, 물고기에는 C섬유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물고기는 최종적으로 통증을 인식하는 대뇌 신피질도 없다. 대뇌 신피질은 뇌에서 가장 최근에 진화한 영역이다.
연구진은 진통제가 물고기에게 듣지 않는 것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물고기에게 물리적 자극을 주면 몸을 뒤트는 것은 바늘로 살짝 찌르는 듯한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무조건적 반응일 뿐이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낚싯바늘에 걸렸다가 풀려난 물고기가 몇 분 안에 활력을 되찾고 장기적 손상을 입지 않는 것도 증거로 제시됐다. 서울대 강봉균 교수는 "감각 신경세포와 감각 신경계가 있으면 통증을 지각할 수는 있으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의식을 동반해야 하므로 고등 중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독일 정부를 지지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물고기나 새우, 게, 바닷가재 등 사람들이 즐기는 해산물은 모두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랐다. 2003년 영국 로슬린연구소 과학자들은 무지개송어의 입술에 벌독이나 산성 용액을 떨어뜨리면 수조 벽면이나 바닥에 입술을 문지르고, 최대 속도로 헤엄칠 때와 같은 호흡 수를 나타내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은 송어 입술에서 감각 세포가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보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올 초 영국 벨파스트 퀸스대 로버트 엘우드 교수 연구진은 '실험생물학 저널'에 "게와 새우 같은 갑각류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게의 다리에 전선을 연결하고 두 동굴 중 한쪽에 들어갈 때만 전기 자극을 줬다.
그러자 전기 자극을 받았던 동굴에 들어가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심지어 전선이 달린 자기 다리를 잘라내고 도망가는 게도 있었다. 고통을 느낄 뿐 아니라 기억까지 한다는 말이다.
엘우드 교수는 "갑각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통념 때문에 다른 동물이라면 결코 허용되지 못할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닷가재 요리를 할 때 산 채로 찜통에 넣고 찐다.
운반 중에 서로 상처를 입힌다고 집게다리를 가위로 잘라내기도 한다. 우리도 게장을 담글 때 살아있는 게에게 뜨거운 국물을 부어버린다. 강아지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고 하는 문어도 뜨거운 물에 산 채로 집어넣는다.
KAIST 김대식 교수는 "과거 백인들은 흑인 노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학대를 했다"며 "동물이 사람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할 순 없지만, 자극에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인도적 대우를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를 먹는데 굳이 살이 발린 채 눈을 뜨고 입을 끔뻑거리는 물고기 대가리와 뼈대까지 내놓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참고로 방송에 나온 물고기는 실제가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