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14 23:41

외환딜러만큼 피 마른다 - 현물환 점유율 20% '한국자금'
자사시스템 쓴 딜러에 경품… 한때 '서울외국환' 제치고 1위
세계 5대 중개社 이미 입성, 뛰어난 정보력으로 딜러 공략
점유율 높이기 치열한 경쟁

외환중개회사 A사의 이모 차장은 요즘 잦은 저녁 약속에 몸이 천근만근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은행 외환 딜러들을 모시는 접대 술자리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은행·증권사·종금사 등의 외환 거래를 중간에서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외환브로커이다.

이 차장은 "지난주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접대술을 마셨다"며 "주변에 간 수치가 높아지고 불규칙한 생활로 이혼 위기에 처한 직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외환브로커들은 40대 중반이면 관리직으로 물러날 정도로 원래부터 업무 강도가 높지만, 최근 외환중개회사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딜러를 상대로 한 영업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외환딜러가 어느 중개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결정 나기 때문에 외환브로커 입장에서 딜러 상대 영업은 가장 중요한 업무다.

◇경품 걸어 시장점유율 역전시키기도

국내 달러 현물환 거래 시장은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가 8대2의 비율로 양분하고 있는데, 시장점유율을 더 높이려는 양측 간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지난 6월 말엔 평소 20%대의 점유율을 기록하던 한국자금중개가 자사 전산시스템을 사용한 딜러들에게 경품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점유율 순위를 바꿔놓기도 했다. 매일 최저가·최고가·평균가 체결 고객을 선정해 안마기·녹즙기·커피머신·호텔상품권 등을 선물로 준 결과 한국자금중개의 시장점유율이 한때 70%까지 올랐고, 서울외국환중개는 30%대로 떨어져 역전된 것이다. 하지만 경품 행사가 끝나고 큰손 딜러들이 서울외국환중개로 돌아가면서 시장점유율 역전 현상은 일주일 만에 끝났다.

하루 평균 외환 거래량 그래프
지난 4월엔 점유율에서 밀리는 한국자금중개가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외환딜러들이 사용하는 중개사별 단말기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제안을 했다. 서울외국환중개는 기존 영업권을 무시하는 제안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기획재정부·한국은행 등 외환 당국이 중재에 나섰지만 7개월간 공방만 오가고 결론은 나지 않은 채 답보 상태에 있다.

◇경쟁 치열한 외환거래 중개시장

현재 국내 외환시장엔 국내 4개사, 해외 6개사 등 총 10개 중개사가 경쟁하고 있다. 국내 브로커들의 수는 총 250여명이다. 규모가 크고 거래가 잦은 국내 외환딜러는 20여명이다. 평균적으로 브로커 10명이 딜러 한명을 붙잡기 위해 경쟁하는 셈이다. 게다가 브로커들은 대부분 계약직이라 회사뿐 아니라 개인의 생존을 걸고 영업을 뛴다.

1998년 11억달러에 불과하던 국내 외환거래의 일평균 규모는 작년 말 216억달러로 20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외환시장이 커지면서 세계 5대 외환중개사들은 2007년에 국내 시장에 입성했고, 작년엔 국내사 2개가 정부 허가를 받아 영업을 하고 있다.

원·달러 현물환 거래는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가 과점하고 있고, 나머지 달러와 원화를 맞교환하는 외환스와프, 선물환(先物換), 외환파생상품들은 전체 10개사가 거래 중개를 경쟁하고 있다.

외환스와프 시장이 작년 말 기준으로 109억달러로 가장 컸고, 다음이 현물환(91억달러), 선물환·기타 파생상품(16억달러) 순이었다.

외국계 외환중개사들은 세계 각지에 뻗어 있는 정보력과 네임 밸류를 무기로 내세워 딜러들을 공략한다. 딜러들이 궁금해하는 투자 관련 해외 뉴스들을 현지 지점을 통해 바로바로 입수해 건네는 방식이다. 해외 외환 물량을 바로 찾아서 원하는 가격에 국내 딜러들에게 연결해주는 강력한 네트워크도 장점이다.

세계 최대인 영국계 아이캡(ICAP), 튤렛프레본(영국), BGC(영국), 스위스계 트레디션 등이 원·달러만 거래되는 국내 외환시장 환경상 영업의 제약이 있지만 외환파생상품 중개 등에서 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아이캡의 경우는 글로벌 연매출(3조원)이 한국자금중개(370억원)의 80배가 넘을 정도로 덩치 면에서도 상대가 안 된다.

◇외환시장 규모 확대 동반해야

외환중개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우리 외환시장은 여전히 경제 규모에 비해 작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 국제결제은행(BIS)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평균 외환거래량(은행과 고객 간 거래까지 포함)은 438억달러로 GDP 대비 5.3%, 연간 무역 규모 대비 13.2%다. 이는 선진국 평균치인 15.9%, 32.4%에 크게 못 미친다. 세계 외환시장에서 차지하는 우리나라 비중은 0.9%로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3.0%)과 세계 GDP에서 점하는 비중(1.6%)에 크게 미달한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원화 거래를 확대하려면 금융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줄이고 다양한 외환상품이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