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북앤수다+] 글자로 674층 빌딩 세운 '훈훈 브라더스'

    입력 : 2013.11.27 05:30

    지름 3㎝ 가량의 투명 아크릴 관 7개가 바닥에서 천장까지 분방하게 치솟았다. 관 내부는 물성(物性)으로의 책 낱장을 한 줄씩 오려 붙인 글자들의 연속. 소설가 배명훈(35)의 장편 ‘타워’에 나오는 텍스트다.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뒤 과학 소설을 쓰는 이례적 경력의 작가. 소설 ‘타워’에는 674층 빌딩과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등장한다. 전시장 천장까지의 높이는 5m. 그 축척에 맞췄달까. 아크릴 관 바닥 주변에 기껏해야 1.8㎝에 불과한 인간 모형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다. 소설의 ‘타워’를 현실에서 재구성한 인물은 건축가 문훈(45). 스페인에 푹 빠진 건축주에게 (투우를 연상시키는) 뿔 달린 건물을 지어준 건축계의 이단아다. 문학과 건축의 이단아를 이어준 ‘융합의 전령사’는 문지문화원 사이와 문화예술위원회의 ‘융·복합 공동기획 프로젝트’. ―제안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조각가, 가구 아티스트 등 여러 사람과 협업을 해 봤지만, 소설가와는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SF.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 아닌가. 책 제목도 ‘타워’였다. 건축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소재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오벨리스크(수직의 첨탑)를 세우지 않나. 멀리서부터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건축물이 타워다.”(문훈) “첫 번째 접점은 ‘타워’였지만, 더 중요한 두 번째 접점이 있다. 나는 인물에 집중해서 쓰는 소설 작법이 아니라, 넓은 범위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타워’는 674층 빌딩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정치와 권력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건축가도 여러가지 스케일의 작업과 시점이 있지 않나. 인테리어에서 도시계획까지. 같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배명훈) 전시공간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20평 남짓한 전시장에는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Expanded Cabinets of Curiosities)이란 이름이 붙었다. 르네상스 귀족들이 진귀한 수집품을 모아 놓은 사적 수장고(收藏庫), ‘경이의 방’에서 힌트를 얻은 작명이다. 30일까지 무료 전시. 이 ‘경이의 방’에는 문훈+배명훈 조합을 포함, 9명의 예술가와 인문학자들이 ‘융·복합’의 이름 아래 1년 동안 준비한 과제물을 제출했다. 소설가 김태용+설치미술가 구동희, 도시학자 최종현+다큐멘터리 감독 안건형, 사진연구가 이경민+영화감독 김경만+영상 작가 이행준(http://ecc.saii.or.kr/) ‘융·복합’이라는 신조어가 근사하고 멋져 보이지만, 사실 이런 이의도 제기될 수 있다. 지난 10년간 하이브리드, 통섭, 컨버전스, 융합이라는 이름들이 생산해낸 결과물이 실제로 대단한 성과를 이뤘는가에 대한 반론 말이다. 이제는 피로감도 일부 느껴지는 상황.
    '타워'의 창조주는 건축가 문훈(왼쪽)과 소설가 배명훈. 1.8m에 불과한 '타워'의 주민 입장에서는 100배 큰 거인이다. 자신들이 건설한 이 프로젝트에, '훈훈' 브라더스가 앉고 섰다.
    ―융합은 혹시 ‘거대한 사기극’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융합과 컨버전스를 오해하는 것 같다. 우리는 컨버전스(Convergence)의 번역어로 흔히 융합을 쓴다. 하지만 융합은 녹여서 하나로 만든다는 뜻이 강하고, 수학 용어 컨버전스는 수렴하지만 결코 만나지 않는 접점을 뜻한다. 완전히 반대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두 개가 녹아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만나면서도 각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 세계적인 유행, 폭발적인 유행을 한 것도 그래서다.”(배명훈) 가령 이런 개념이다. 배명훈의 전공은 국제 정치학. 학계에서는 EU통합 연구에서도 컨버전스라는 용어를 썼다. 통합 이후에도 개별 국가는 사라지지않고 존재한다. 하지만 새로운 회원국으로 가입하려면 EU의 경제·노동정책 수준을 맞춰야 가입할 수 있다. 그게 ‘컨버전스’이고 ‘융합’이라는 것. 그러니 지원하는 기관도, 받아들이는 관객도 ‘거대한 기대’는 삼갈 일이다. 혈기왕성한 문훈이 개입한다. “남녀가 몸을 합치면 엄청난 스파크가 발생하죠. 새로운 에너지지. 하지만 결국 인생은 따로 가는 거라고. 끝까지 일심동체로 살아라 그러는게 이상한거 아닙니까.” 명랑하게 웃는 건축가를 보고 있자니, 그의 졸업논문이 화장장과 호텔을 함께 짓는 프로젝트였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죽은 자를 태운 에너지로 연인의 방을 덥힌다? 얼핏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그로테스크 상상력, 혹은 물렁물렁한 상상력이다.
    투명 관 속의 '타워' 텍스트. 이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하는 열쇠다.
    ―이번 융합 프로젝트의 성과와 교훈은. “요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을 영어본으로 읽고 있다. 그런데 10페이지 읽으니 어려워서 못읽겠더라. 그래서 장난을 시작했다. 책 속의 이 단어, 저 단어를 내 맘대로 결합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거다. 왼쪽 페이지 셋째 줄의 I와 오른쪽 페이지의 둘째 줄의 Like를 골라 ‘I Like Her’를 완성하는거지. 책 안에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책을 반드시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한 문장만 읽어도 배부르다. 나는 세상이 불에 탄 뒤 남은 유일한 텍스트가 배명훈의 ‘타워’라고 가정했다. ‘타워’의 텍스트는 이제 수없이 많이 생성될 텍스트의 어머니가 되겠지. 혹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비밀의 열쇠, 또는 운송기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융합’을 조급하게, 성급하게 독촉해서는 안될 것 같다. 진정한 융합을 위해서는 자유롭게 서로를 놔 줘야 한다.”(문훈) ‘소개팅’이 아니라 ‘헌팅’. 명랑한 건축가 문훈의 비유다. 진정한 융합은 자발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했을 때 탄생하는 것. 인위적인 짝짓기가 아니라 설레는 상대에게 다가가 접점을 찾는다. 배명훈의 석사학위 논문 소재는 1차 대전. 하지만 관심은 고통받는 개인의 내면이나 영웅의 활약이 아니라, 당시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배치분포가 만들어낸 전체적 윤곽선이었다. 674층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점에 불과한 개별 인간이 아니라, 674층에서 내려다볼 때만 가능한 전체적인 평면도. 소설가와 건축가가 서로에게 끌린 이유다. ‘경이의 방’을 방문해 보시기를. 당신도 이 ‘훈훈’ 커플의 작품에 살짝 설렐지 모르니까. 북앤수다+ 건축가 문훈은 무척이나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력 자체로 ‘융합’의 아이콘이라 할만 하겠더군요.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텅스턴을 처리하기 위해 암모니아 가스를 내뿜는 공장들이 있던 마을입니다. 그 다음 살았던 곳은 지구 반대편 호주의 태즈매니아 섬. 지질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간가죠. 사춘기는 그곳에서 보냈답니다. 소설가 백영옥의 표현을 빌면 ‘세기말 풍경과 지상낙원의 풍경’을 모두 체험한거죠. 반면 열살 아래 소설가 배명훈은 ‘초식남’으로 보였습니다. 왜 요즘 여자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온화하고 조용한 남자 말이지요. 이날 대화에서도 대화는 문훈이 주도했지만, 소위 데피니션(definition)이 필요한 대목에서는 역시 소설가의 꼼꼼함이 빛나더군요. 이날 대화의 중심은 역시 ‘융합’의 성취와 한계였는데, 두 사람 모두 인위적인 매치메이킹(matchmaking)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더군요. ‘융합’ 프로젝트는 우후죽순 늘어나는데, 어떻게 합쳐야 할지를 고민하는 기획들은 거의 없다는거죠. 무조건 합치라고한 한다면서요. 두 사람은 지난 3월부터 이번 11월까지 대략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접점을 찾아나갔죠. 올해 프로젝트는 일단 첫 아이디어의 러프한 스케치 정도로 봐달라고 하더군요. 문지문화원 사이의 유운성 부장은 총 3년 프로젝트로 이 융복합 기획을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습니다. ‘타워’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안에서 3차원 축구를 시도하거나, 바닥 뿐만 아니라 천장에 지도를 만들고 관객의 눈높이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미디어아트로 시선의 역전과 재역전을 꾀하는 것. 장기적 구상입니다. 사실 소설가와 독자 입장에서 ‘전시’는 느낌이 빨리 오지 않는 낯선 단어입니다. ‘경이의 방’에는 설치미술가 구동희가 배치한 매트리스가 하나 있습니다. 관객들이 자유롭게 누워서 책을 읽어도 좋다는 취지죠. 많은 사람들이 ‘감상’ 대상으로 착각하지만, 직접 사용해도 좋은 매트리스 입니다. 읽는 경험에도 새로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 관객의 능동적 읽기 체험을 허락하는 ‘경이의 방’입니다. 아 참, 이 전시에는 평범한 도록 대신 책(1만원)이 있습니다. ‘경이의 방’의 사용설명서죠. 그 안에는 배명훈과 김태용의 단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9명 예술가와 인문학자의 협업을 좀 더 친절하게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