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Y] 운석충돌 크레이터? 대야성 옛터? 합천 초계분지의 신비

  • 시니어조선

    입력 : 2014.04.11 22:51

    양구 해안 펀치볼(punch bowl)은 화채 그릇처럼 오목하게 패여 있어 6·25 때 미군들이 붙인 이름이다. 운석충돌 흔적이다, 침식분지다 설이 많은데 침식분지라는 것이 정설이다. 해안 펀치볼과 규모와 형태가 매우 흡사한 곳이 또 있다. 바로 합천 초계분지로, 최근의 학계 조사에서는 침식분지가 아니라 운석충돌로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암산에서 바라본 초계분지. 산줄기로 빙 둘러싸인 원형분지 형태가 확연하다. 오른쪽 높은 산이 외륜산 중 최고봉인 미타산(662m).
    대암산에서 바라본 초계분지. 산줄기로 빙 둘러싸인 원형분지 형태가 확연하다. 오른쪽 높은 산이 외륜산 중 최고봉인 미타산(662m).

    ‘아니, 저긴 어디지? 해안 편치볼과 똑같잖아!”

    오래 전 서울~부산 간 비행기에서 특별한 지형을 발견했다. 비행기를 탈 때는 가능한 한 창가에 앉아 지상의 풍경을 보는데, 그 날은 구름 없는 화창한 날씨여서 저 아래로 선명히 몸체를 드러낸 가야산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야산 뒤편으로 마치 컴퍼스로 그린 듯 산으로 둘러싸인 반듯한 분지 지형이 드러난 것이다. 첫눈에도 자연적으로는 형성되기 어려운 형태였다. 화산폭발로 생겨난 분화구인가, 운석충돌로 인한 크레이터인가. 아니면 우연하게 원형을 이룬 침식분지인가.

    대암산 표지석과 선명하게 드러난 가야산(1430m).
    대암산 표지석과 선명하게 드러난 가야산(1430m).

    운석충돌로 인한 크레이터 가능성 높아

    자료를 찾아보니 그곳은 합천에 있는 초계분지(적중분지라고도 함)였다. 이미 관련 학계에서는 꽤 논란이 되고 있는 곳이었다. 분지의 평지만 해도 동서 6.6㎞, 남북 4.2㎞에 타원형을 이루고 규모와 형태 모두 양구 해안 펀치볼(punch bowl)과 흡사하다. 분지를 에워싼 산줄기가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은 것도 똑 같다. 다만 산의 높이는 펀치볼이 훨씬 높아서 최고봉인 대암산은 1304m에 달하지만 초계분지의 최고봉 미타산은 662m에 불과하다.

    초계분지를 에워싼 산줄기는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다. 남쪽은 최고봉 미타산을 필두로 천황산(655m)을 위시해 500~600m급 봉 우리들이 도열해 있고, 북쪽은 200~300m로 훨씬 낮다. 분지에 모여든 물은 북동쪽으로 실낱 같이 터진 협곡으로 빠져나간다. 이 좁은 골짜기에는 적중농공단지가 길쭉하게 들어서 있다. 물길은 합천댐에서 흘러온 황강과 합류했다가 곧 낙동강 본류와 만난다.

    초계분지 내부 모습. 수구(水口)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계단식 선상지 지형이 뚜렷하다. 뒤쪽은 미타산.
    초계분지 내부 모습. 수구(水口)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계단식 선상지 지형이 뚜렷하다. 뒤쪽은 미타산.

    몇 년 전 학계의 조사결과, 분지 내부는 퇴적암으로 이뤄져 있고, 화산암이 없어 화산분출로 형성된 분화구는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대신 암(岩) 밀도조사와 중력조사에서 중심의 암석층이 외부 충격으로 부숴진 파쇄대로 나타나 운석충돌로 인한 크레이터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분지 중심부의 파쇄대는 지하 600m까지 분포한다니 운석 충돌설에 더욱 힘이 실린다. 하지만 해저지형이 융기한 것일 수도 있고, 침식분지의 가능성도 여전히 높아서 운석충돌 크레이터로 단정하기는 아직 일러 보인다. 만약 운석충돌공이 맞다면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지형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운석충돌 크레이터는 많지만 형태가 제대로 남은 것은 드물다.

    삼국시대 격전지, 대야성 옛터?

    초계분지를 가까이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대가 있다. 분지 서쪽에 솟은 대암산(591m)이다. 해안 펀치볼의 최고봉과도 우연하게 이름이 같은데, 정상에 있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까지 임도가 나 있어 자동차나 자전거로 오를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 이륙을 위해 숲을 제거해 전망이 탁 트인다. 초계분지는 물론, 지리산과 가야산까지 잘 보이는 천혜의 전망대다.

    위성사진을 보면 초계분지의 특별함이 한결 두드러진다. 대암산은 서쪽 끝에 있고, 동북쪽으로는 물길이 빠져나가는 직선의 협곡이 보인다.
    위성사진을 보면 초계분지의 특별함이 한결 두드러진다. 대암산은 서쪽 끝에 있고, 동북쪽으로는 물길이 빠져나가는 직선의 협곡이 보인다.

    꼭 비행기나 위성사진이 아니더라도 대암산 정상에 서는 순간, 발밑으로 푹 꺼진 원형 분지는 과연 기이하다. 완벽하게 산으로 둘러싸인 평탄한 분지는 마치 별세계처럼 동떨어져 있고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소외된 듯 고요하게 잠겨 있다. 왜 이런 지형이 생겼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인 침식분지라면 어떻게 이런 기묘한 형상이 됐을까. 느낌으로는 화산 분화구나 운석충돌 크레이터가 분명해 보인다.

    대암산 정상의 산불감시소에서 일하던 노인은 학계 조사를 근거로 “운석 충돌로 생겨난 크레이터가 분명하다”고 단정지었다. 또 하나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이 곳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대야성 터라고 옛날부터 전해져 온다”는 그의 말이었다. 대야성(大耶城)은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로, 김춘추의 딸인 고타소의 남편 김품석이 성주로 있다가 백제군의 계략과 부하의 배신으로 성을 빼앗긴 곳이다. 이 과정에서 김품석과 고타소가 죽는데, 애지중지하던 딸을 잃은 김춘추의 분노와 복수 의지가 삼국통일의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곳이다.

    그런데 대야성 터로 알려진 합천읍내의 성터는 규모가 너무 작아 정말 대야성이 맞는지 논란이 되어 왔다. 나 역시 <산성 삼국기>를 쓰면서 합천읍내의 성터를 답사했는데, 규모가 작고 흔적도 멸실되어 의아해 하던 차였다. 초계분지 토박이 노인은 “분지 전체가 천연의 성이었다”고 말했다. 분지를 에워싼 외륜산이 성벽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정상부 곳곳에는 성벽의 흔적도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대암산 정상에도 무너진 성벽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흩어져 있다.

    마침 추수가 끝나가는 늦가을이었다. 양동이에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거대한 분지가 발밑으로 광활하다. 크레이터인가 아닌가, 대야성인가 아닌가. 호기심을 부채질하는 신비의 대지 앞에서 발길은 떨어질 줄 모른다.


    찾아가기

    자가용이든 대중교통이든 합천읍을 경유하는 것이 편하다. 대암산 패러글라이딩장은 동쪽의 초계분지나 서쪽의 대양면 무곡리 양쪽에서 오를 수 있다. 자전거로 합천읍을 출발해 무곡리를 거쳐 대암산을 올랐다가 초계분지로 내려와 분지를 일주한 다음 24번 국도를 따라 합천읍으로 돌아오는 40㎞ 코스를 추천한다. 분지일주는 외곽도로나 농로를 이용한다. 대암산 업힐 구간은 동서 각각 4㎞ 정도.

    * 대암산 패러글라이딩장 : 경남 합천군 초계면 원당리 산42


    자료제공·자전거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