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설악산 첫 등산

내 집은 북한산 속에 있다. 북한산 언저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자그마한 집들이 재개발의 물결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아파트 단지로 변한 곳이다. 그래서 산속의 궁전같이 보이기도 한다. 산과 접하는 한쪽에는 약수도 흐르고 둘레길로 통하는 쪽문도 달려 있다. 거실에서 마주 보이는 곳은 온통 숲이 무성한 산속만 보이니 나는 따로 등산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집이 곧 산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건강진단 결과가 나왔는데 운동을 정말 땀 흘리게 열심히 하든지 약을 먹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기에 등산을 해 볼까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설악산 트레킹 코스가 있으니 같이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갈려고 하니 준비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모든 것을 준비하는데 값도 천차만별이다. 우선 제일 먼저 등산화부터 마련했다. 고어텍스라는 낱말을 익히 들었던 터라 좋은 제품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는데 마침 50% 세일을 한다고 하니 두말 않고 샀다. 발에 맞는 걸 신으면 산에 올라갈 때 아플 수도 있으니 조금 넉넉한 것이 좋다고 해서 선택했는데 꼭 커다란 군화를 신은 것 같이 둔하다.

옷은 울긋불긋 화려한 것이 유행이라 하는데 입을 자신이 없어 다음에 생각해 보고 사기로 하고 지팡이만 마련했다. 전날 지인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가는 곳이 한계령 '대스폭포' 라고 했다. 등산이라고는 처음인데 가는 곳이 '대스폭포?' 얼마나 험악한 곳 이길래! 죽음의 폭포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생각하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혼자 처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짐이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서 가고 싶지 않았다. 무서운 곳에 갈 자신이 없다고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 o 자를 빠트렸군요. 대승폭포예요”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다.

버스 안에 모인 분들이 내 눈엔 모두 프로 산악인 같았다. 여태껏 관심 없었던 등산장비에 유난히 눈이 많이 간다. 한계령 장수대 휴게소에서 트레킹 강사님의 교육을 받고 산에 올랐다. 대승폭포로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그나마 나무 층계로 되어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숨이 찼다. 돌길도 많았다. 지팡이는 너무나도 성가셔서 아예 어깨에 걸치고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낙오되지 않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헛디딜까 봐 발만 쳐다보고 대승폭포에 도달하니 깎아지른 절벽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절경이 어지러웠다.
 
대승폭포 물줄기는 거대할 줄 알았는데 물줄기가 약해 실망했다. 간식을 먹고 하산하는 길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한손엔 지팡이를 어깨에 메고 한손으로는 난간을 꼭 붙잡고 바들거리며 내려오는 내 모습이 좀 창피했다. 장수대 휴게소에 내려와 쉬고 나니 그제야 주변의 경치가 눈에 보인다. 폐허가 된 듯한 커다란 기와집이 눈에 들어왔다. 6.25 전쟁 때 설악산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지어졌다는 장수대다. 좀 더 돌봐야 할 귀중한 장소가 버림받는 듯해서 가슴 아팠다. 그 옆에 서 있는 건물도 쇠락하긴 마찬가지다.

주인이 있는지 짐작이 안 갈 만큼 관리가 부실했다. 또 그 옆에 있는 커다란 건물에는 잡초 무성 한 곳에 강아지 두 마리가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잡초를 헤치고 아래로 내려가니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가 있었다. 홍수 때 큰 피해를 본 곳이라 사방공사를 튼튼하게 잘해 놓은 곳이다. 차가운 냇물에 세수하고 발을 담그니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다. 간단한 트레킹이 아니라 설악산 정상을 다녀온 듯한 뿌듯함이 계속 산을 찾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