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이끌 10대 트렌드 미리 보기

경제가 불안하고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소비자의 마음을 잘 읽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불경기의 소비자는 무조건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구매의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즉,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에는 지출을 끊고, 만족감을 주는 소비에는 다소 비싸더라도 지출을 몰아주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낮은 가격이 아니라 “이 제품은 나에게 가격만큼의 ‘가치’를 주고 있는가?”에 대한 ‘납득’이다. 소비자가 그러한 납득을 느끼는 대상은 늘 변화하는데, 그것을 바로 ‘트렌드’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누가 먼저 잡아낼 수 있느냐다. 다시 말해 ‘트렌드 대응 능력’이 생존의 핵심 덕목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트렌드를 읽는 눈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 2015>를 통해 내년도 소비시장을 이끌 10대 트렌드를 선정했다. 10가지 트렌드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 햄릿증후군 ▲ 감각의 향연 ▲ 옴니채널 전쟁 ▲ 증거중독 ▲ 꼬리, 몸통을 흔들다 ▲ 일상을 자랑질하다 ▲ 치고 빠지기 ▲ 럭셔리의 끝, 평범 ▲ 우리 할머니가 달라졌어요 ▲ 숨은 골목 찾기. 그중 특히 눈여겨봐야 할 두 가지 트렌드를 살펴보자.

증거를 보여주세요!

세월호 사건과 군대 내 가혹행위 사건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던 2014년도 저물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만연했던 사회적 불안은 소비생활로도 이어졌다. 나 이외에 어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소비자 스스로 증거를 찾아 나서고 있다.

고발 형태의 소비자 정보 프로그램은 소비자들의 이러한 의심에 불을 지폈다. 채널A의 <먹거리 X파일>은 매주 식재료 시장과 요식업 시장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며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MBC <불만제로>는 음식에서 더 나아가 각종 생활용품, 서비스의 허와 실을 밝혀내며 소비자들을 각성시키고 있다.

공공 정보에 대한 불신과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세상에 대한 의심은 소비자를 정보의 바다 속에 직접 뛰어들게 만들었다. 시장의 ‘호갱’(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손님을 뜻하는 신조어)이 되지 않기 위해 사실에 대한 증거를 스스로 파헤치는 적극성을 띠게 된 것이다.

최근 불거진 국산 과자 불매운동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단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지난 8월 6일 MBC <불만제로>에서 방영한 ‘한국 과자의 내수 차별’ 편을 시작으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국내 과자의 과대포장을 고발하는 사진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제품 손상을 줄이기 위해 질소 포장은 어쩔 수 없다”는 기업의 해명에도 소비자들은 “질소는 과자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내걸며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4년 9월 28일, 제과업체들의 과대포장에 일침을 가하고자 대학생들이 봉지 과자로 배를 만들어 한강을 건너는 파격적인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증거중독 트렌드에 대한 기업의 대응은 두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는 ‘시각화’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들은 그 자리에서 증명할 수 있는 시각적인 증거에 집착할 것이다. 둘째는 ‘수치화’다. 소비자들은 객관적인 정보를 수치로 증명하는 제품에 더욱 신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 포장 방식과 제품 정보를 자세하게 설명해 보여주는 방식의 마케팅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상을 자랑질하다

지난해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셀피(Selfie)’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셀피란 ‘스마트폰 등으로 자신의 모습을 직접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 사람 혹은 그 사진’을 뜻한다.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말로는 ‘셀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셀카봉’은 셀피 시대의 수혜를 듬뿍 받은 대표 주자다.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셀카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막대형 제품은 전년과 비교해 판매량이 열 배 이상 급증하며 셀피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높이기 위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변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을 모방하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의 지적처럼, 현대의 과시에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아닌 자신이 선망하는 일종의 연출된 자아가 담겨 있다. 우연히 카메라 렌즈에 포착당한 듯 보이는 못난 모습마저도 사실은 스스로 철저히 편집해 올린 것이라는 말이다.

이 같은 ‘타아도취’의 세상에서 SNS는 자랑하는 방식과 표현 방법을 바꾸고, 아울러 소비하는 아이템과 패턴마저 바꿔놓았다. 이 ‘자랑질’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사야(구매해야) 할 것들’로 빼곡하던 위시리스트 대신, ‘누려야(경험해야) 할 것들’로 채워진 버킷리스트가 뜨고 있다. 단순히 특정 물건을 손에 쥐는 것보다, 이제는 다채로운 경험을 과시하고자 하는, 보다 드라마틱한 연출 공식이 등장한 것이다.

2000년대에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했던 가상 공간이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였다면, 2014년 현재 젊은이들의 사이버 집결지는 ‘인스타그램’이다. 2012년 페이스북이 10억 달러에 인수한 인스타그램은 사진 중심의 SNS로, 특히 셀피들 사이에서 톡톡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기가 예쁘게 혹은 멋있게 나온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어 미니홈피에 올렸다면, 요즘 셀피들은 내가 오늘도 건재하다는 것을 인증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이제 셀카는 자신의 존재 증명이자 사회활동의 도구로까지 진화한 것이다.

이처럼 시시콜콜한 일상을 멋진 사진으로 연출하고 그 이미지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폼 나는 물건’보다 그 물건을 통해 할 수 있는 ‘폼 나는 행위’를 찾는다. 이제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팔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