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조약

언제나 거대한 세계사의 일부로만 등장하던 조약이 전면에 등장한 책이 있다. 서울교육대학교의 함규진 교수가 수년에 걸쳐 집필해 완성한 《조약의 세계사》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형성한 64개의 조약을 통해서 세계사를 들여다봤다.

역사는 대화와 타협의 산물?

동물의 세계는 철저히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용된다. 인간의 세계도 이익의 충돌과 갈등의 상황에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대화와 타협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혹은 공동의 이익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협상을 하고 조약으로 문서화한 역사가 여기 있다.

《조약의 세계사》에는 총 64개의 조약이 등장한다. 역사 속 숱한 협정과 조약들 중에 오늘날의 세계를 있게 한 조약들을 엄선했다. 기원전 히타이트-이집트 조약부터 저 먼 남극의 이권에 관한 남극조약 그리고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된 강화도조약부터 한 번의 담판으로 강동 6주의 땅을 확보한 서희-소손녕 협정까지. 지금과 같은 국경선이 획정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어떠한 조약들이 체결되었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우리 삶 깊숙이 파고 든 수많은 조약들

저자는 조약이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가령,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이에 동의했든 하지 않았든 우리가 마트에서 소고기 한 근, 옥수수 하나를 살 때에도 영향을 준다. 비슷한 맥락으로 2014년 홍콩 주민들은 1984년에 체결된 홍콩반환협정에서 명시하고 있는 ‘홍콩인이 홍콩의 통치를 맡는다’라는 조항이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현재의 홍콩 민주화 시위의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에 체결된 홍콩반환협정과 불가피하게 만나게 된다.

2014년, 앞서 발표했던 ‘2017년의 차기 선거부터 직선제 허용’이라는 중국 정부의 공약에 “중국이 선임하는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는 복수 후보를 대상으로 직선제를 실시한다”는 구체안이 나왔다. 결국 중국 입맛에 맞는 행정장관이 계속 선임되도록 하겠다는 이야기였기에 홍콩인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져 한때 제2의 톈안먼 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홍콩반환협정 389쪽 

때로는 재치 있게 때로는 신랄하게 풀어 쓴 조약의 역사

저자는 난해하고 불친절한 국제조약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조약이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지만 불평등조약, 강압에 의한 조약들이 있었음도 지적한다. 또한 각 조약의 말미에는 조약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인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바꿔 말하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호응하는 실질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익과 거대 세력의 로비가 앞선다는 냉혹한 국제정치 세계에서라도 말이다. 환경 담론은 번성하지만 정작 환경문제에 큰 진전은 없어 보이는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반성해야 하고, 각자의 정부에도 반성을 요구해야 한다. 더 이상적이면서 더 현실적인 협력과 도약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막화방지협약 449쪽

시대와 장소를 망라하는 조약의 역사를 통해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책에 수록된 엄선된 사진과 상세한 지도는 조약을 둘러싼 복잡한 정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조약의 의의와 교훈은 저자 특유의 신랄하면서도 재치 있는 화법으로 전하고 있다. 저자의 인문학적, 역사적 통찰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