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동장군의 수묵화 전시

곤히 잠든 밤사이에 눈이 내렸다. 툭 터진 들판을 영하의 바람이 휘모리장단에 춤판을 벌였다. 벼를 베어낸 논에는 벼 포기의 남은 둥치 사이에 눈발이 하얗다. 논둑에 꼿꼿이 선 채로 말라버린 풀 줄기에는 눈이 얼어 보석으로 매달렸다. 아침 태양에 곱게 빛난다. 저 멀리 산자락의 농가엔 이른 아침을 짓는 연기가 굴뚝을 기어올라 찬바람에 살풀이 춤사위를 흉내 낸다. 때로는 날렵하게 움직이다 잔잔하게 가슴속의 한을 서서히 꼬아 올린다. 알라딘 요술 항아리에서 나타나는 거인을 닮았다.

겨울 들녘이다. 나는 오늘도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목을 감싸는 옷을 두툼하게 입었다. 내복을 입었음에도 정강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것만 같다. 왜일까? 기력이 쇠하여 감일까?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섭리일까? 강아지도 옷을 입혔다. 산책하는 주변의 논에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한겨울에는 개점휴업이다. 닫힌 출입문 사이로 바람이 운다. 지붕엔 눈이 겨울을 즐긴다. 자정이 되면 밤하늘의 별을 세며 시인이 되지 않을까? 지나가는 동장군은 하우스 문설주에 기대에 시인의 시 낭송을 즐겼을 거다.

밤새 별과 바람과 함께 놀던 동장군이 떠나며 비닐하우스 벽면에 그려놓은 수묵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떤 붓으로 그렸을까? 묵향이 남아 있는 듯하다. 아침의 태양이 가져가기 전에 렌즈에 담아 전시회를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