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염원

산으로 오른다. 봄을 기다리는 개나리 꽃봉오리가 몽글거린다. 나무 숲에서 멧새 떼가 후루룩 날아오른다. 너무도 작아 앙증맞은 멧새 한 녀석이 휘늘어진 나뭇가지 사이에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날 구경하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잽싸게 날아오른다. 마지막 맵새가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가 가만가만 흔들린다. 흔들릴 때마다 봄을 기다리는 꽃망울이 부풀어 오른다.

산모롱이를 돌아서자 돌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염원을 담아 올렸을 돌탑앞에 잠시 머문다. 처음엔 그저 심심풀이로 쌓았나보다 했다. 누군가 헐어버린 흔적을 발견하면 참 할 일 없는 사람도 있다 싶었다. 누군가 다시 돌탑을 쌓아 올리고 다시 허물어지고 지금 생각해 보니 그도 나처럼 염원 하나 있었나 보다. 누군가 헐어버리면 쌓아 올리고 헐리면 쌓아 올리고 벌써 일 년 째 씨름 중이다.

이 추운 계절, 새해 아침에 깊은 겨울 산으로 찾아 든 것은 머릿속에서 나가지 못하고 얼키고 설켜서 맴돌고 있는 생각들 때문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마음 깊숙이 박아놓지 말고 물처럼 바람처럼 흘려 보내야한다. 그런데도 마음이란 녀석은 때로는 흘러가지 못하고 마음 속에 총알처럼 들어가 박혀 상처를 내고 만다.

똑똑하다고 할까? 멍청하다고 할까? 마음은 시시 때때로 마음 밖으로 튀어나와 돈 때문에, 말 때문에 시시각각 자기를 내세우려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마음이고 마음을 바꾸는 것도 마음인데 내 마음을 나도 어쩌지 못하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다. 오늘은 끓어올랐다가 내일은 차갑게 식어 버린다. 오늘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다가 내일은 나만 온 세상 불행을 다 짊어지고 사는 것처럼 불행하고 슬프다. 나이가 들수 록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비우려 한다고 다 비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채우려고 한다고 채워지면 무슨 고민이 있겠는가.

산길을 벗어나 숲으로 든다. 여기도 누군가의 염원 하나가 머문다. 누군가 쌓아 올린 돌탑이다. 그냥 스쳐 지나려다가 그 돌탑 옆에 내 돌탑 하나 세운다. 길에서 눈에도 잘 띄지 않을 오층짜리 석탑이다. 돌 위에 돌을, 마음 위에 마음을 얹었다. 새해에 바라는 염원이 누군가의 눈에 띄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정 탈까 무서워서다. 돌을 얹고 돌아서려는데 돌 하나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속에서 마음 하나가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오층에 아슬아슬 올라앉은 돌이 떨어져 내렸다. 다시 돌 위에 돌을, 마음 위에 마음을 얹고 돌아 선다.

마음이 가볍다. 사붓사붓 산길을 다시 오른다. 마음을 내려놓기는커녕 마음에 마음을 올려놓고도 사붓사붓 산길을 오르니 애당초에 마음 비우고 살기는 그른 인생이다. 그래 마음 비우고 살기는 글렀으니 산신령께 내 마음이나 받아 달라고 녹지 않은 산비탈에 내 발자국을 선명히 찍는다. 나 왔다갔다고 내 마음 펼쳐놓고 갔다고…. 아무리 바쁜 산신령님도 어쩌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어미의 마음 하나 들어 주시지 않을까 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