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우리 생활 속의 숫자 이야기(2)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숫자에 얽힌 이야기들을 더 해 보아야겠다. 갯수를 나타날 때,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쓴다. 이를 복합적으로 한두(한둘)개, 서너개, 대여섯 등으로 쓰는데, 정확하게 써 보면 다음과 같다.

1~2에 해당되는 말은 ‘가을을 알리는 듯, 나뭇잎이 한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서나 ‘한두가지 일이 남아 있다’ 와 같이 ‘한둘’이나 ‘한두’로 쓰인다. 2~3은 ‘두셋씩 편을 갈라’ ‘비가 두세시간 쏟아졌다’처럼 ‘두셋’ 이나 ‘두세’로 쓰인다. 4~5의 경우는 ‘네댓’이나 ’네다섯‘으로, 5~6의 경우에는 ‘대여섯’으로 쓰임을 볼 수 있다. 또 7~8은 ‘예닐곱’, 8~9는 ‘여덟아홉’ ‘엳아홉’ 등으로 쓴다. 열이 조금 넘는 경우엔 무어라 할까? ‘여남은 명이 모여서 상의를 하였다’에서처럼 ‘여남은’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생각나는 일이 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고장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예산결산위원장을 지내신 분이, 학교에 와서 강의하던 중, ‘예닐곱’ 이니, ‘여남은’이니 하는 단어를 예로 들면서, 우리 나라의 수 표기법이 정확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명확한 수 생활을 하도록 강조하였다. 나라의 예산을 다룰 때는 더욱 수를 명확히 표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농촌에서 아리숭한 표현이 등장한다. ‘반나절 가면 된다’면 거리로는 얼만지 알 수 없고, ‘얘, 장에 가서 조기를 대여섯마리만 사 오너라’ 하면 도대체 다섯 마리를 사 오라는 건지, 여섯 마리를 사 오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사람이 ‘그 곳에 가려면, 얼마나 걸리겠소?’ 하고 물으니, ‘가 보시오!’ 하는 게 아닌가? 대답은 안 해 주고, 가 보라니, 이렇게 불친절한 사람이 있는가 하고 몇 발자국 앞으로 가니, 그제서야, ‘반 시간 쯤 걸리겠소.’ 했단다. 그 사람의 걷는 속도를 가늠하여 대답을 해 준 것이다.

우리가 쓰는 숫자 중, ‘0’은 참으로 신기한 수이다. 하나도 없는 것이니, 나타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다. ‘백삼십오’를 ‘135’라고 쓰면 되는데, 만약 백 개 하고 다섯 개 있으면, 아무 것도 없는 ‘0’을 중간에 쓰지 않으면 수를 나타낼 재간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숫자를 도입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0’이다. 10개 쯤 서부터 한 개 씩 제해 가며, 수를 세는데, ‘두 개 있습니다. 한 개 있습니다.’ 다음 마지막 한 개를 지우면서는 무어라 할까 고민이 생긴다. 지침서에는 ‘없습니다.’ 가 아니라, ‘0 개 있습니다.’ 라고 부르도록 지도하고 있다. ‘0’도 수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재치있는 아이는 ‘빵 개 있습니다.’ 라고 하기도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이 ‘0’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부를 때, ‘이빵, 이공, 이오, 이제로, 이동그라미’등으로 불러 고민인데, ‘부르기도 좋고, 쓰기도 좋고, 가감승제에도 변하지 않는 절대수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아마도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이름이 아닐까?

‘생활 속의 숫자’ 이야기를 몇 가지 해 보자.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 때문인 것 같고, ‘21’은 ‘둘이 하나 된다’는 뜻이란다. 주례사에서도 이를 인용한 적이 있다. ‘서로 각기 다른 환경에서 두 곳을 보다가, 이제 서로를 마주 하고, 한 곳을 보아야 한다.’는 요지의 말이다.

나라에 따라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수, 나뻐하는 수가 있다. ‘1’은 모두가 좋아하는 숫자에 속한다. ‘첫째(일등), Nomber One'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2’ 와 ‘3’도 무난한 숫자인데, ‘4’가 문제다. 밥상 다리, 차 바퀴를 생각하면 4개가 되어야 가장 안정을 얻는데, 한자 문화권에서 ‘죽을 사(死)’와 같다 하여 도외시를 당하니 억울하기도 할 게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4층’을 ‘F층’으로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7’은 나누어지지 않는 큰 수인데, 소주 1병을 7잔 나오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즉, 소주 1병을 2사람이 마시면 1잔이 모자라고, 3사람이 마시면 2잔이 모자라 결국 한 병 또 한 병 자꾸 시키게 된다는 주당들의 핑계는 차라리 애교스럽다.

다른 숫자는 각기 숫자 개조가 가능한대 ‘8’은 못 고친다. 그래서 ‘팔자는 못 고친다’다. 특히 중국인들은 ‘8’을 좋아하는데, '八(여덟 팔)'이라는 중국어 발음이 'pa'(빠)인데 '發(필 발)'의 'fa'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고, ‘發(필 발)’자에는 ‘發財(발재)’, 즉 ‘돈을 벌다 재산을 모으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참고로 북경올림픽은 2008년 8월 8일 8시에 개최되었다.

13은 저주의 숫자로 치부하고 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까지 13명이었고, 금요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래서 ‘13일의 금요일(Thirteen Friday)’은 미국 사람들에겐 최대로 기피하는 날이 되어, 내가 공군으로 복무할 때, 그 날엔 비행 작전도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끝으로 ‘숫자로 나타낸 노인생활 10계명’을 적는다.  

(일) 일일이 알려고  하지마라.
(이) 이것 저것 너무 따지지  마라.
(삼) 삼삼오오 어울려  다녀라.
(사) 사생결단하듯 살지 마라.
(오) 오기를 아무 때나 부리지 말아라.
(육) 육체적인 활동을 많이 해라.
(칠) 칠십% 쯤에서 만족할 줄 알라.
(팔) 팔팔하게 신나게 살아라.
(구) 구질구질한 것은 다 버려라.
(십) 십%는 사회에 환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