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직화냄비에 빵 굽기

봄 햇살이 거실 마룻바닥에서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오후. 고소한 빵 냄새가 주방에서부터 슬금슬금 넘어와 거실 안을 휘젓고 다닌다. 봄 햇살 사이를 누비고 다니다가 급기야 나의 콧속으로 스며든다. ‘벌써’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가 직화구이 냄비 뚜껑을 열어 본다. 빵은 노릇노릇한 색깔에 푹신푹신하게 부풀어 오른 모양새가 나의 침샘을 자극한다. 모서리 한쪽을 조심스럽게 떼어 입에 넣어 본다. 고소하고 달콤함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든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삼시세끼 어촌 편이 방영되었다. 난 이 프로를 만든 PD 작품이라면 거의 빼지 않고 보는 사람이다. 사실 어촌 편의 예고편을 보면서 차승원, 유해진, 이들이 만들어 간다고. 글쎄 유해진이라면 모르겠지만 차승원이라, 내가 생각했던 차승원은 차갑고 냉정한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상남자 중 상남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몰랐다. 정말 몰랐다. 차승원이라는 상남자가 실은 차줌마였다는 것을.

'삼시세끼 어촌 편' 5회에서 보여준 차승원의 제빵 솜씨는 내게는 단연 압권이었다. 불을 때는 아궁이에 빵을 굽는다. 말이 돼. 어떻게 그게 가능해. 오븐이 있어도 빵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데. 굽는다 해도 구워지다 말 거야. 방송이니까 맛있다고 하지. 아마 저건 먹지 못할 거야. 내가 가지고 있는 요리 상식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궁금했다. 정말로 빵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나다. 어떻게 하든지 한번은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는 곳이 아파트니 불 때는 아궁이는 없고 어쩐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것. 고구마구이 할 때 쓰는 직화구이 냄비다. 그래, 그거야. 아궁이에 된다면 직화구이 냄비로도 되겠지. 머릿속에 상상이 상상의 가지를 뻗다가 드디어 직화구이 냄비로 결론이 났다.

결론이 났으니 해 봐야지. 밀가루에 우유 넣고 설탕 넣고 이스트 넣고, 반죽하여 전자레인지에 2분 돌려주면야 발효까지 손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기엔 마음이 너무 급했다. 믹스 제품을 쓰기로 했다. 요즘은 마트에 가면 발효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믹스제품이 많이 나와 있어서 평소에도 그 믹스 제품을 자주 쓰는 편이었다. 창고에 들어가 찾아보니 한번은 할 수 있는 양이 있었다.

다행이다. 믹스된 빵가루를 그릇에 쏟고 우유를 넣고 달걀을 넣고 풀었다. 덩어리가 지지 않게 천천히 꼼꼼히 풀었다. 검고 긴 빵틀에 빵 반죽을 담고 직화냄비 안에 올려놓았다. 가스 불을 켜고 직화냄비가 달아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아주 낮추어주었다. 아궁이에서도 불  붙은 숯의 열기로 빵을 구웠으니 불을 낮추는 게 맞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직화냄비 뚜껑을 닫고 그 위를 뜨거운 공기가 새 나가지 않도록 무거운 질그릇 하나 엎어놓았다. 그러기를 사십 분여, 드디어 고소하고 폭신폭신하고 달콤한 빵이 완성된 것이다.

참 헛살았다. 무엇을 하려면 먼저 기구를 사고 연장을 사고 재료를 샀다.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려고 했던 일들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상식을 ‘차줌마’라는 남자 하나가 일순간에 깨 버렸다. 것두 살림 9단이라고 자처했던 나를 말이다. 안 된다는 것을 되는 것으로 바꾸는 것. 상식을 뒤엎고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 인류가 끊임없이 발전해 나온 이유가 바로 이것, 발상의 전환이었던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