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서 묻지마 살인, 총기난사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전과는 다른 심리적 증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그 원인을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우리의 정체성 형성 과정, 인성 발달 과정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데서 찾는다. 철학사와 윤리학사, 종교사에서부터 뇌과학, 동물행동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언론 기사들과 개인적인 체험을 오가며 명쾌하게 입증해낸다. 그리고 이것이 왜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 ‘내 아이의 일’인지 섬뜩하게 납득시킨다. 또 이를 극복할 개인적이고도 공동체적인 대안을 모색해본다.
인간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경제체제
최근 심리적 문제의 양상들이 더 심각해지고 더 다양해지고 더 많아졌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전보다 더 고비용의 보육과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공격성과 부적응을 보인다. 왕따가 발생하는 연령대는 점점 낮아져 이제 유치원에서도 폭력 문제를 고민할 정도다.
게다가 이런 심리적 문제의 파장은 대단히 폭넓게 사회 전반을 아우른다. 육아는 놀라울 정도로 편리한 발명품들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직원들은 직장에 대한 만족도나 충성도가 이전보다 떨어진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소비재의 질은 점점 떨어진다. 외식업계와 식품업계가 온갖 메뉴를 개발하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적어지고 비용도 점점 비싸진다. 문화상품들은 큰돈을 투자해 겨우 ‘추억팔이’를 하는 데 만족하고, 자잘한 방송 사고와 신문기사의 오류들은 점점 많아지며, 책 속 오역이나 오탈자들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을 근본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웬만해선 사회 비판적 언급을 자제하는 저명한 정신분석가가 입을 열었다. 파울 페르하에허는 특히 ‘엔론 사회’라는 이름으로 직장과 학교와 병원에서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특히 교육, 학문, 보건 제도처럼 간단히 효율성을 평가할 수 없는 분야를 간단히 평가하려고 하면서 생겨나는 문제들은 아주 치명적이다.
학교에서는 연구자나 교수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지만 연구는 점점 더 부정확해지고 실험 결과 조작 같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정신 보건 업계에서는 유전학과 뇌과학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심리학자들이 모두 의사가 되려고 한다. 또 그런 과학적 권위를 앞세워 장애를 대량생산해내고, 내담자들을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한 훈육이나 약물처방을 남용한다.
정체성과 윤리와 행복과 좋은 삶의 관계
유명인들의 학력 위조, 황우석 사건과 같은 연구 결과 위조, 최근의 폭스바겐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모범생으로 분류되던 중학생의 교실 폭발물 설치, 온갖 증오범죄들, 묻지마 테러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오늘날, 이런 사회 현상들을 가로지르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고민하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윤리와 정체성의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
‘정체성’이라고 하면 오래 전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서 혹은 대학 때 교양 심리학 교재에서 본 것을 끝으로, 혹은 육아책에서 본 것을 끝으로, 이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지 오래다. 하지만 ‘정체성’의 문제는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현실의 여러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 늘 호출해야 하는 평생의 과제이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쓰인 글귀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고양된 자기인식 없이는 어떤 사회적 과제도 담당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오랜 지혜를 담고 있다. ‘정체성’의 뜻을 제대로 회복시키는 것은 ‘윤리’의 의미를 회복시키는 것이나 거의 비슷하게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저자가 좋은 삶을 위해 제안하는 것들은 새롭지는 않다. 이기심과 구분되는 자기배려에 집중하기, 일하는 사람의 권한을 지배자의 권력과 구분하고 인정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결핍’을 ‘의미’로 바꾸기 위해 온갖 창의적이고 끈질긴 노력을 기울이기. 인간의 조건을 끌어안는 이런 전통적인 방법이야말로 지금의 시스템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