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 댐 건설로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이 조립식으로 짜 맞추어져 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복원하면서 밝혀졌다.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로 미끄러지는 네 귀퉁이가 들려있어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다. 밑면에는 계단 모양으로 5단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통일신라시대 전기인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전형적인 석탑양식으로 옮겨지는 초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이 탑과 함께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에서 시작되어 이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문화재청
고선사지(高仙寺址)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지나 오르막 언덕길이 시작되면 오른쪽은 바로 토함산 뒤편의 가파른 산악지형이지만 왼쪽으로는 보문호만큼 큰 인공저수지가 하나 더 보이는데 바로 덕동호이다. 덕동호 변을 따라 계속 달려가면 굽이굽이 황룡 계곡을 지나 추령을 넘어가게 되는데 물론 도로는 터널로 많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고개턱을 넘어 내리막길로마저 달려가면 감은사지 쌍탑이 나오고 대왕암이 있는 동해에 이르게 된다. 이 길이 바로 감은사 가는 길, 감포 가도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꼽히는 길이다.
70년대 경주 개발사업으로 만들어진 인공저수지 덕동호는 경주 일대 상수원과 농업용수는 물론 아래편 보문호의 수위조절기능도 갖춘 다목적 인공호수인데 바로 그 덕동호 어디쯤이 고산사가 있던 곳이었으나 저수지 둑을 막고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절터는 물속으로 잠기고 말았으며, 삼층석탑을 비롯한 유물들은 경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고선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원효(元曉)가 머물렀던 절로 전해지는데 1914년 5월 이 절의 삼층석탑 주변에서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조각이 발견되었는바, 서당화상은 원효대사를 말하며 그의 손자인 설중업이 할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고선사와 원효대사의 상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국내에 국보로 선정된 탑이 모두 31기인데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감은사지 동, 서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초기 거탑(巨塔)으로 손꼽히며 이중 기단에 삼층 탑신이라는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의 시원 양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상륜부에 커다란 찰주가 남아있어 더 커 보이고 무언가 달라 보이지만 고선사지 삼층석탑과는 쌍둥이처럼 닮은 석탑이다.
즉, 2단의 기단 위에 3층 몸돌과 지붕돌, 노반까지 높이가 10. 1m라는 점과 모두 82장의 석재로 이루어진 점이 서로 닮았다. 다만 고선사지 석탑에는 1층 몸돌에 문비를 새긴 점이 다를 뿐, 너무나 같은 두 탑의 양식은 이후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