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대 적멸보궁] ⑥ 금강산 건봉사(乾鳳寺)

    입력 : 2016.09.20 10:24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인데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직접 봉안하였다는 통도사와 상원사, 봉정암, 법흥사, 그리고 정암사를 5대 적멸보궁으로 손꼽는다.

    이 중 태백산 정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 시대에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頂骨)을 직접 봉안한 것이며, 정암사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5대 적멸보궁에 용연사와 도리사, 건봉사를 합쳐 8대 적멸보궁이라고도 하는데 그 첫 번째 이야기는 금강산 건봉사이다.


    금강산 건봉사(乾鳳寺)

    건봉사는 건봉산 아래에 있건마는 '금강산 건봉사'라고 한다. 기왕이면 더 크고 유명한 산 이름을 빌리고 싶은 심정에서 금강산을 불러왔으리라고 보이나, 건봉산 줄기가 금강산과 이어져 있으니 꼭 틀린 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야박한 생각이 들어서 그냥 수용하기로 한다.

    아무튼 조선 4대 사찰, 또는 금강산 4대 사찰로 불리던 대찰(大刹) 건봉사는 1878년 대화재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휴전 후 민통선(민간인 통제선)에 갇힌 채 자칫 잊혀버릴 뻔 한 절집이다. 한때는 조선 31 본산의 하나로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 등을 말사로 두었을 만큼 큰 절집이었으나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1980년대 후반 민통선 출입을 개방하여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이후 왕성한 발굴 및 복원작업을 진행 중이며 역사적 가치를 평가하여 사적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건봉사 창건과 염불만일회

    건봉사는 520년(신라 법흥왕 7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다는데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고구려 아도화상에 대하여는 역사서마다 또는 전해오는 이야기마다 조금씩 달라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 해도 신라 법흥왕 때보다는 한참 앞선 시대 사람이므로 사실과는 맞지 않는 창건설화이다. 다만 우리나라 절집들의 창건설화 역시 유명 고승들과 연계시키려는 경향이 있어 이 역시 그러한 유형일 것으로 보인다.

    이후 758년에 발진 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 스님 등과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효시라고 한다.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 31명의 스님과 1,820인의 신도들이 참여하여 27년 5개월 동안 산문을 나서지 않고 오직 염불삼매에 빠져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태어나 성불하기를 서원하고 결사하는 것을 일컫는데 120인은 철 따라 의복을 보시하고 1,700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수행자들을 봉양하였다.

    787년 염불만일을 회향하는 날 서쪽 하늘이 열리고 31인의 염불행자들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날아 올랐다고 한다.1.5킬로 지점에서 육신을 버리고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로 바로 왕생하였다. 매미 허물 벗듯이 육신의 옷을 벗고 극락에 왕생한 터에 세운 부도탑이 현재의 건봉사 등공탑이다. 그 뒤 염불만일회를 후원했던 1,820인도 차례로 극락왕생하여 건봉사는 아미타도량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 고려말에 이르러 도선국사가 절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서봉사로 바꾸었다가 1358년에는 나옹스님이 중건하고 건봉사로 개칭하여 비로소 염불과 선, 교의 수행을 갖춘 사찰 '건봉사'가 되었다.

    1465년에는 세조가 이 절로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으로 삼은 뒤 어실각을 짓게 하고 전답을 내렸으며,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하니 이때부터 조선왕실의 원당이 되었으며, 성종은 효령대군, 한명회, 신숙주, 조흥수, 등을 파견하여 노비, 미역밭과 염전을 하사하고 사방 십 리 안을 모두 절의 재산으로 삼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서 사명대사가 승병을 기병한 호국의 본거지였으며, 1605년에는 사명대사가 일본에 강화사로 갔다가 통도사에서 왜군이 약탈하여 갔던 부처님 치아사리를 되찾아와서 이 절에 봉안한 뒤 1606년에 중건하니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된 까닭이다.

    건봉사 절집 배치도. ①번 불이문을 들어서 능파교을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대웅전 영역이고, 능파교를 건너지 않고 계속 직진하면 적멸보궁이다.
    불이문(不二門). 1920년 건립된 것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옛 건물이다. 문(門)이라기보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벽체가 없는 건물 형태에 가깝고, 팔작지붕에 이공(翼工)계이며 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세운 것과 돌기둥에 금강저를 음각한 것이 특이하다.
    현판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이며, 안쪽 천정에는 '불이문중건단청 대시주(不二門重建丹淸大施主)' '설암당봉흔(雪巖堂奉欣)' 佛紀二五五九年戊辰四月日이라 묵서로 쓰인 현판이 걸려있다.
    불이문을 지나면 전체적으로 오르막 지형인데 오른쪽으로 능파교를 건너면 대웅전이 있고, 계속 올라가면 적멸보궁이 있다. 왼쪽으로는 솟대 모양의 돌기둥(石柱)이 우뚝 솟아있고 그 옆으로 범종각이 있어 불전4물(佛前四物)이 걸려있다. 토속신앙인 솟대를 세워 나무아미타불을 새긴 것도 특이하고, 위에 오리를 얹었다고들 하지만 혹자는 오리는 물갈퀴가 있어 높은 가지에 앉지 못한다고도 한다. 사찰에 세웠으니 봉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듯하다.
    능파교(凌波橋)는 보물 제1336호로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의 무지개 모양 다리, 홍교(虹橋)이다.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 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가 영조 21년(1745)에 대홍수로 붕괴하여 영조 25년(1749)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山映樓)를 고쳐 쌓는 데에 이용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 보물로 지정된 후 보수공사 중 무너져 다시 복원하면서 너무 새로 만든 느낌인지라 아쉽다.
    능파교를 건너면 누각 봉서루가 있고, 비로소 금강산 건봉사(金剛山 乾鳳寺) 현판이 보인다. 아래층 중앙을 통하여 대웅전 마당으로 오르게 되어 있는데, 누각으로 들어서기 전 좌우로 선 돌기둥에 십바라밀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십바라밀 석주, 이곳 건봉사에만 있어 보기 힘든 것인데 일제 강점기에 31 본산이자 호국사찰이던 건봉사를 일본풍으로 바꾸기 위해 세웠던 일제의 잔재라는 설(說)이 있다. 아무튼, 바라밀은 보살의 수행법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에 이를 보조하는 4바라밀(방편, 원, 력, 지)을 더해 십바라밀이라고 하는데 좌우 2개의 돌기둥에 각각 5개의 문양을 새겼다.
    대웅전 쪽에서 바라본 봉서루, 2층 누각이 1층처럼 보이는 시원스럽게 들어선 모습이다.
    2층 누각에 서면 발아래 능파교가 보이고 건너편은 극락전 지역으로 발굴, 복원 예정이다.
    대웅전, 오른쪽 명부전을 지나면 장군샘이 나오고 산길을 오르면 등공대로 갈 수 있다.

    내친 김에 등공대(騰空臺)에 올라가 보려 했는데 왕복 40분이 걸리는 산길이란다. 그런데 문제는 10명 이상 단체로 가야 하고, 오후 4시 이전에 가야 하며, 사전에 관할 군부대에 통보 후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데 민통선內 산행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부득이 등공대 답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사명대사가 의병승들에게 먹여 질병을 낫게 했다는 냉천약수 장군샘물만 한 모금 마신 후 대웅전 앞마당 오른쪽 건물인 만일염불원(萬日念佛院)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치아사리를 친견하였다.

    부처님 치아사리 5과,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후 통도사에서 훔쳐간 사리를 되찾아와 그중 12과를 이곳 건봉사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그런데 1986년 6월 이 사리를 도굴당했으며,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사리를 돌려주라는 바람에 겁이 난 범인들이 8과를 돌려주었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결국 나머지 4과는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며, 되찾은 8과 중 5과는 친견하게 하였고 3과는 적멸보궁 사리탑에 안치하였다.

    만일염불회 결과 극락으로 올라간 현장 등공대는 오르지 못하고 부처님 치아사리를 친견한 후 다시 능파교를 건너와 가장 위쪽에 있는 적멸보궁을 향하였다. 이곳에 사리 3과를 모셔 건봉사가 8대 적멸보궁이 된 것인데 적멸보궁 건물이나 뒤편의 사리탑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단출하였다.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다시 2개의 석주가 세워져 있다. 왼쪽에는 용사활지(龍蛇活地), 오른쪽에는 방생장계(放生?啓)라고 쓰여 있으니 용과 뱀이 사는 곳이요, 방생의 장소라는 뜻이다. 석주의 다른 면에는 역시 십바라밀을 새겼고 돌다리 형태로 건너가는 사각연지가 있는데 이 역시 일제가 친일불교로 세운 잔재로 일본을 뜻하는 日 자라고 한다.
    적멸보궁은 작고 아담한 팔작지붕 전각이다. 내부는 예상대로 불상을 모시지 않은 채 뒷면의 사리탑이 보이도록 유리문을 냈다.
    통도사 금강계단을 축소한 듯한 사리탑, 진신사리 3과를 모셔 적멸보궁이다.

    어쩌면 현재 남한에서는 가장 북쪽에 있는 절 건봉사. 한때는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 등을 말사로 두고 조선 31본 사의 위용을 자랑하던 건봉사는 화재와 전란으로 연거푸 전소하고 다시 짓고를 반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또 한동안은 민간인의 접근이 어려워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이제는 계속된 중창불사로 사격(寺格)을 높이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인데 생각보다 여기저기에 일제의 잔재가 묻어 있다는 사실이 또한 의아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있으니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게다가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라는 쉽지 않은 서원 결사의 역사는 물론 아미타불의 현신으로 극락으로 올라갔다는 등공대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전설 같은 이야기로 건봉사의 설화가 아니라 현실로 존재하는 유적이다. 다음에는 반드시 답사해보고 싶다.

    절 입구 초입에 세워진 사명대사 동상, 넓은 잔디밭을 두었는데 자주 손질하지 못하는 듯 하다.
    사명대사 동상 옆에는 건봉사의 오래된 승탑들이 보인다. 말없이 얼마나 유서깊은 절집인지를 보여준다.
    건봉사를 둘러본 후, 귀경길에 만난 고성육송정홍교, 보물 제1337호. 능파교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듯 하다.

    또한 사명대사가 의병승군을 일으킨 호국사찰로 일본에서 찾아온 부처님 진신사리, 그것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는 치아사리를 이곳에 모셔 8대 적멸보궁이 되었다는 건봉사 답사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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