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이야기 | 오산 물향기수목원] 물과 나무와 사람이 만나는, 물 향기 나는 그곳

물에서 향기가 날 것만 같은 수목원이다. 옛날부터 아무데나 땅을 파면 물이 솟는, 가물지 않는 곳이라 하여 동네 이름도 수청동(水淸洞)이다.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에는 1970년대부터 임업시험장이 있었다.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에서 묘목을 기른 것이다. 나무가 빨리 자랄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춘 이곳에, 경기도는 5년간의 작업 끝에 2006년 수목원을 개원했다.

올해 개원 10주년을 맞은 물향기수목원을 찾았다. 2008년부터 여기서 숲해설을 하고 있는 베테랑 김남희 숲해설가의 안내로 수목원에 든다. 물이 많은 물향기수목원의 하이라이트는 습지생태원과 수생식물원이다. 때문에 안개가 많이 끼는데, 아침 햇살과 안개가 섞인 모습이 신비롭다고 일러 준다. 수목원에 들어서면 벤치 쉼터가 있는데, 이곳이 나름 우등생 나무들이 모인 곳이다. 임업시험장 시절부터 이곳에 수종이 우수한 나무를 심고 씨앗을 받았다. 때문에 최소 40년 이상 된 터줏대감격의 나무들이 모여 있다.

빌딩 높은 도시에서 가장 흔한 조경수가 회양목이다. 공해에 강하고, 다듬어서 울타리로 쓸 수 있어 유용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회양목이 원래 키가 작은 식물인줄 알지만 이곳 수목원의 회양목은 자연 그대로 두어 3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숲 마니아들은 회양목을 ‘수리부엉이 3마리’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회양목은 7월쯤 열매가 맺히면, 열매가 터지면서 씨앗이 떨어져 번식하는데, 터진 자리의 모습이 부엉이 3마리 같다 하여 생긴 것이다.

큰 화분에는 30년 된 무궁화가 있다. 오래되었지만 나무줄기도 한손에 잡히고 키도 그렇게 크지 않다. 무궁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기를 반복하며 100일 동안 꽃이 핀다. 한국 사람처럼 무척 부지런한 꽃이다. 무궁화는 종류가 상당히 많은데, 다만 해충에 약한 편이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사진기자인 이경호 차장의 “우와! 벌새 아니에요?”하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 벌새가 있었던가. 김남희 숲해설가는 흔히 벌새로 오해하는 ‘박각시’라고 일러 준다. 벌새마냥 엄청 빠른 날갯짓으로 정지 비행을 하며 꿀을 빨아먹는다. 벌새는 열대지방에 서식하며, 실제 우리나라에서 발견한다면 학계에 보고해야 할 일이다. 박각시는 나방 같은 곤충이며 날갯짓만 보면 벌새로 오해할 수 있지만 곤충 특유의 더듬이가 있어 쉽게 구분 가능하다. 벌새처럼 부지런히 꽃을 옮겨 다니는 덕분에 본의 아니게 ‘수분수정의 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꽃이 번식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날 수 없는 인연, 상사화

예쁘장한 꽃이 무리지어 피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상사화다. 제주도가 원산지인 제주상사화와 남부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진노랑상사화가 있다. 여름 끝자락에 꽃이 피며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서 만날 수 없는 인연이라 하여 상사화라 불린다. 상사병을 품었기 때문인지, 뿌리와 줄기에 독이 있다. 한방에서는 비늘줄기를 약재로 쓰는데 소아마비에 진통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간간이 백양상사화도 피는데, 장성 백양사가 고향인 이 꽃은 순도 높은 붉은색이라 여러 상사화들 중에서도 눈에 띈다. 평범한 여자들 사이에 미녀가 한 명 낀 것 같다고 김남희 숲해설가는 극찬한다.

꽃무릇(석산) 역시 상사화의 일종인데 이름을 달리 부르는 건 그만큼 꽃이 더 화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9월 말부터 피는 통에 무대 마지막 순서로 나서는 스타마냥 눈길을 끈다. 꽃무릇은 처연하게도 붉게 피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데, 상사화처럼 슬픈 사랑을 상징한다.

물향기수목원에선 화려한 문양의 나비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산호랑나비가 가장 많다. 공주처럼 살포시 꽃 사이를 팔랑거리며 날아다닌다. 호수가 있는 수생식물원에서는 산호랑나비애벌레를 흔히 볼 수 있다. 애벌레를 건드리면 위험을 느껴 방어기재로 묘한 오렌지 냄새를 뿜어내며, 주황색 뿔 같은 것이 솟구친다. 호기심에 애벌레를 손가락으로 건드려선 안 된다. 사람의 체온으로도 화상을 입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수에는 노란 꽃이 반듯한 꽃대 위에 예쁘장하게 피었다. 왜개연꽃이다. 수생식물로 키가 작아 보이지만 물속에 뿌리를 두고 있어 키가 1m가 넘는 것들이 많다. 왜개연과 흡사한 것이 남개연인데 암술머리가 붉은 것이 왜개연, 노란 것이 남개연이다.

수면 위에는 마름모 형태의 잎도 흔히 볼 수 있는데, 한해살이 풀인 마름이다. 잎자루에 공기주머니가 있어 물에 떠서 잎을 드러내고 광합성을 한다. 그 사이로 핀 섬세한 흰꽃은 어리연이다. 둥근 잎 위에 실로 짠 듯 아기자기한 흰 꽃을 피웠다. 벼이삭 혹은 갈대처럼 무리지어 수면 위에 수풀을 이룬 것은 줄이다. 백연은 이들 사이에 백조처럼 피어 고고한 자태로 고급스런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호수는 왜개연, 남개연, 마름, 줄, 가시연, 백연 같은 수생식물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물속 화원이 되었다. 이 수생식물들은 그냥 두면 지나치게 번식해 온통 초록잎으로 수면을 빼곡히 채울 수도 있어 주기적으로 걷어내고 있다. 물의 여백을 두어 생태환경도 조절하고 보기에도 조화롭게 하고 있는 셈이다.

수목원에는 수려한 나무가 많지만 김남희 숲해설가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감나무다. 흔하고 수수한 감나무를 좋아하는 건, 어릴 적 기억 때문이다. 집 밖에서 놀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와서 홍시를 손에 쥐어 주었다. 지금은 얼마든지 홍시를 사먹을 수 있지만 그때의 홍시 맛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시골집 마당에 주렁주렁 열매를 맺은 감나무와 할아버지가 연동된 기억으로 남아 감나무를 볼 때면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습지생태원은 호수가 아닌 늪의 숲 같은 곳이다. 습지 속에 데크를 깔아놓아 원시 숲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곳의 귀한 손님은 주름제비란인데 울릉도에서 자라는 것을 가져왔다. 특별히 보호하기 위해 펜스를 쳐 놓았는데, 꽃이 풍성해 그 자체로 카리스마가 있다. 울릉도에선 흔히 볼 수 있지만 내륙에서 자생하는 것은 귀하다.

사약으로 썼던 3종 세트

조선시대 죄인에게 사약을 내리던 용도로 쓰였던 유독식물이 있다. 대표적인 세 가지가 투구꽃, 천남성, 동이나물이다. 하지만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사약을 먹고 바로 죽지는 않았다고 한다. 무척 고통스러워 뒹굴며, 스스로 죽여 달라 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약에는 여러 가지 독을 섞어서 썼단다.

참느릅나무 노거수는 귀한 편인데, 이곳에는 50년을 훌쩍 넘긴 큰 참느릅나무가 있다. 이 나무 그늘이 좋다는 걸 사람들도 알아서 펜스를 넘어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펴는 일이 잦다. 돗자리를 펴고 사람들이 눌러앉는 일이 반복되면 땅이 굳어져 나무뿌리가 숨 쉬기 힘들어진다. 참느릅나무를 지키기 위해 수목원이 낸 아이디어는, 그대로 두자는 것이었다. 나무 아래는 제초작업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여러 풀들이 높게 자라났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길로만 다니게 되었다.

수목원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곳이다. 때문에 입장료만으로 수익을 내는 곳은 드물다. 물향기수목원 역시 1,500원의 입장료를 받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수익을 내는 사업장이 아닌, 시민들의 힐링을 위한 공간이기에 공공 서비스에 가깝다. 시민들이 숲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위안을 얻음으로써 얻는 힐링의 가치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다.

물향기수목원은 걷고 싶은 길이 많다. 메타세쿼이아가 근위병처럼 선 길도 있고, 소나무가 운치 있게 선 길, 물속에 뿌리내린 낙우송이 있는 길, 연꽃이 있는 길 등 연인과 가족과, 아니면 혼자서 걷기 좋은 물향기 나는 길이 가득하다. 우리 일상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 물 향기 나는 숲으로 가자.

김남희 숲해설가

 “물향기수목원은 1,500원짜리 볼거리가 아니에요”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을 정도로 식물을 좋아했던 그녀는 아이들을 키워놓고 2008년부터 숲해설을 시작했다. 평택에서 오산까지 한 시간을 걸려 출근하지만, 매일 숲에 간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얘기한다. 

숲해설을 신청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볼 만한 게 뭡니까?”이다. 그럴 땐 “꼭 보려고만 하지 말고 만나러 오라”고 얘기한다. “만날 것이 무궁무진해서 다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에 많은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숲해설이 일이지만, 김남희 숲해설가는 여전히 나뭇잎 하나, 꽃잎 하나 떨어지는 것이 감동이다. 다만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이상 기온으로 자연이 점점 곤란을 겪고 있다며 사람들이 조금만 더 생활 속에서 환경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노쇼’, 즉 숲해설을 예약해 놓고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줄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한다. 이 숲에서 만나는 것들은 1,500원짜리 볼거리가 아닌데, 입장료만 보고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틀 전에만 예약 취소를 해도 듣고 싶어도 못 듣는 다른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향기수목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

동절기(11월부터 2월 말)는 오후 5시까지 운영. 입장료 1,500원. 주차료 1일 3,000원. 숲해설은 오전 10시에 가능하며 인원수 상관없이 한 명이라도 해설 가능. 단 홈페이지 통해 예약해야 함. 무료이며 1시간 30분 정도 소요.

주소 경기도 오산시 청학로 211. 문의 031-378-1261.

홈페이지 http://farm.gg.go.kr/sigt/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