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기록자' 정이현, 조용한 모멸을 탐구하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ㅣ정이현 지음ㅣ문학과지성사ㅣ250쪽ㅣ1만2000원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세속을 이렇게 요약하고는 덧붙인다. "나와 빼닮은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달콤한 나의 도시' 등을 통해 도시 기록자를 자처해 온 저자가 2013년부터 써내려간 일곱 편의 단편소설집. 이해득실의 교환이 뚜렷한 공간, 즉물적 관계에 익숙한 개인 등 현대의 삭막함을 드러내는 전략은 전작과 유사하지만 근작에 이르러 시선은 조용한 모멸의 심리 묘사로 나아간다. "그럭저럭 살아간다…최악을 모면하며 살아가는 것을 그럭저럭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미스조와 거북이와 나')이라거나 "잠시 한눈을 팔아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우리 안의 천사')의 자조처럼 "한때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이들은 아무도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밤의 대관람차')는 한숨이다.

이들은 굳이 세상과 연결되기를 희망하지 않으며, 봉제 고양이나 늙은 개 혹은 거북이 따위를 키우며 곁을 채운다. 그것은 국적을 불문하는 결핍이다. '돼지'라 놀림받으며 잦은 전학을 다니던 여학생은 가까스로 어느 국제학교에서 만난 북한 여자애와 진심 어린 우정을 나누지만, 인연은 이어지지 않는다('영영, 여름').

그럼에도 인간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소설은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수록작 '안나'에 이르러 주인공은 읊조리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원망하기 위해서, 욕망하기 위해서, 털어놓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