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영국, 모국어는 일본어… 직업은 國樂"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Aancod Abe Zaccarelli·26)는 맨발로 서울 국립국악원 잔디밭을 걸어 다녔다. 음악 얘기만 나오면 비트박스에 노래까지 '북 치고 장구 치고'였다. 국적은 영국이고 모국어는 일본어다. 세계를 돌며 길거리 공연을 했던 그가 아리랑TV 국악 프로그램 '아리랑 오디세이' 진행을 맡았다.

한국에서는 2014년 서울 교대역에서 G.O.D의 노래 '촛불 하나'를 부른 영상으로 유명해졌다.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으로 랩을 소화해내고 시민의 합창까지 이끌어냈다.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원곡 가수인 G.O.D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에도 올랐다.

한국과도 인연이 오래됐다. 태어나자마자 일본으로 입양된 안코드는 열두 살 때 한국에 와 6년을 살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이 나라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다가 나중엔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왕따를 당했어요. 어느 쪽이든 공평하게 어울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로 살았다. 10개월 동안 이탈리아 한인 민박집에 머물면서 한국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달랑 24유로를 들고 노숙하려던 나를 한국인 사장님이 재워주고 먹여줬다. 밤마다 한국 손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며 웃었다.

음악은 아홉 살 때 MTV에 나온 본 조비를 보고 환호하면서 입문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본 조비의 'It's my life'를 불렀다. 버스킹(busking·길거리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4~5년 전. 호주·태국·포르투갈·프랑스를 돌면서 밤마다 거리로 나가 공연했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지,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정신 차리고 나니 음악가가 돼 있네요."

국악 방송도 '음악'이라는 이유만으로 덥석 맡았다. 친구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러 한국에 왔을 때 아리랑TV의 제안을 받았다. "국악이라곤 인사동 레스토랑에 흐르는 가야금 버전의 모차르트밖에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외국인'이 아닌 '음악인'으로 국악인을 만나는 일이라기에 하겠다 했어요."

방송은 외계 행성에서 지구 음악을 듣고 내려온 외계인 안코드가 국악인을 만나는 콘셉트다. 실험적 '모큐멘터리(다큐멘터리+드라마)' 형식으로 국악 연주 8팀과 만나 즉흥 연주를 펼친다. 국악 악기 중에선 대금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대금 연주자인 신명욱씨와 연주했을 때 코드와 박자만 약속했을 뿐인데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고 했다.

혹시 진짜 외계인 아니냐고 묻자 "세계 어디를 가도 나를 신기하게 생각한다. 내 안에서 여러 나라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저는 어느 나라에 가도 '외국인'이에요. 그걸 인정하고 안코드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면서 행복해졌어요."

국악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딱 한 입만 더 먹어보라고 하고 싶다"며 "어려운 재즈 음악도 계속 들어야 천재성을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MC를 맡으면서 어쩔 수 없이 국악을 반복해 듣다 보니 깊이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 기회가 저에겐 축복이었죠. 5~6초 듣고 잘 모르겠다면 5초만 더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