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먼저 알아본 걸그룹이 있다?

헤비메탈 그룹 '메가데스' 출신의 마티 프리드먼(54)은 록 음악 팬 사이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기타리스트. 프리드먼은 2년 전 한국의 3인조 여성 보컬 그룹 '바버렛츠'의 첫 음반이 발매된 직후, 바버렛츠 멤버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1950~60년대 미국 여성 보컬 그룹의 복고적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의 노래가 마음에 쏙 든다는 내용의 '팬레터'를 보낸 것이다.

프리드먼의 '팬심'은 공치사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 성수동 지하 스튜디오에 머물면서 바버렛츠의 2집 음반 작업에 참여했다. 기타 연주는 물론, 작곡과 편곡도 맡았다. 바버렛츠의 리더 안신애(30)는 "프리드먼은 비행기 출국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도 연습과 녹음에 매달리는 '모범생 스타일'"이라며 "헤비메탈뿐 아니라 복고풍의 팝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에 폭넓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말했다.

프리드먼의 경우가 보여주듯, 바버렛츠는 해외 음악계에서 먼저 실력을 인정받은 보컬 그룹이다. 재즈와 펑크, 솔의 장점을 버무려서 세계적 인기를 얻은 영국 밴드 자미로콰이의 원년 베이스기타 연주자 스튜어트 젠더(42)도 이들의 팬을 자청한다. 젠더는 지난 5월 영국 브라이턴에서 열린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바버렛츠의 공연을 본 뒤, 무대 뒤로 찾아와 멤버들과 인사를 나눴다. 젠더 역시 바버렛츠의 이번 음반에서 베이스기타와 작·편곡을 맡았다. 최근 발매된 이들의 2집 수록곡 '품절남'에서는 프리드먼이 기타, 젠더가 베이스를 각각 연주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와룡(臥龍)과 봉추(鳳雛)를 모두 손에 넣은 유비의 심경이 이들과 비슷할 듯싶다. 안신애는 "1950~60년대 팝 음악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구현하고자 했던 음악적 지향점에 해외 음악인들도 공감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풍성하면서도 맛깔나는 화음의 매력에 집중했던 데뷔 음반과 비교하면, 이번 2집 음반은 디스코 펑키와 리듬앤드블루스(R&B), 솔까지 음악적 스펙트럼이 대폭 확장됐다. 바버렛츠 멤버인 안신애·경선(30)·박소희(25)가 각각 독창을 맡은 곡도 늘었다. 멤버 박소희는 "지난 음반에서는 우리 팀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음반에서는 우리 팀의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경계를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화려한 경력만 놓고 보면 대형 기획사의 지원을 받은 '벼락스타' 같지만, 이들은 2012년 결성 이후 2014년 첫 음반을 발표할 때까지 2년간 홍대와 이태원 클럽가 등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았다. 서울예대와 성신여대 실용음악과에서 보컬을 전공한 멤버들은 윤하·김종국·박정현 같은 가수들의 공연에서 코러스를 맡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도 스스로를 '인디 걸그룹'이라고 소개한다. '광야에서'의 작곡가 문대현, '서른 즈음에'를 썼던 작곡가 강승원이 이들의 음악적 후원자다. 바버렛츠는 "인디는 주류(主流)와 대비되는 비주류라는 뜻이 아니다. 작사·작곡과 노래는 물론이고 머리 모양과 의상, 메이크업까지 멤버들이 직접 상의해서 결정하는 자립적인 그룹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들은 음악만큼이나 말도 다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