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酒黨 셋 "한 잔 술에 진솔한 토크가 술술"

7일 오후 서울 연남동의 한 술집. 밤 9시 무렵 아이보리색 간판에 불이 켜졌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33㎡(약 10평) 남짓한 이 공간은 본격 취중(醉中) 토크쇼를 표방한 tvN '인생술집'의 세트장. 출연자와 어울리는 술을 선택해 촬영 내내 실제로 술잔을 기울인다. '배우 하지원' 편 촬영을 앞두고 이 술집의 주인인 신동엽(45), 탁재훈(48), 김준현(36)을 만났다. 연예계 주당(酒黨)으로 손꼽히는 이들은 입 모아 "살다 보니 이런 고마운 프로그램도 다 나온다"며 웃었다.

◇출연자를 무장해제시키는 한 잔의 술

8일 방송된 '배우 조진웅' 편 녹화는 전날 오후 9시쯤 시작해서 그다음 날 새벽 4시쯤 끝났다. '배우 박성웅' 편은 새벽 4시쯤 촬영을 마친 뒤 24시간 감자탕집으로 자리를 옮겨 두 시간 더 마셨다. 진행자와 게스트가 "30분만 더 찍자"면서 마시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동이 튼다. 신동엽은 "한 잔 술의 마력(魔力)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라고 했다. "연륜 있는 방송인이라 해도 출연자와 친분이 없으면 어색하긴 마찬가지예요. 마음이 편해지려면 물리적 시간이 반드시 소요되니까. 우리는 주어진 시간 안에 이 작업을 마쳐야 하잖아요. 술 한 잔은 그 시간을 줄여주고, 출연자의 마음을 무장해제시켜요. 카메라 수십 대가 돌아가는 촬영장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제격이지. 문제는 되레 '수위 조절'이에요. 너무 취하면 방송에 쓸 수 없으니까."

세 진행자의 역할은 남자 셋 모인 술자리의 전형(典型)을 따른다. '큰 형님' 탁재훈이 달변으로 분위기를 띄우면 신동엽이 대화를 이끌고, 막내인 김준현은 맛있는 안주와 기타 가락을 곁들인다. 악사(樂士) 역할은 김준현이 자처했다. "술 먹다가 노래 부르거나 연주하는 걸 좋아한다"며 기타 몸통을 4분의 3박자로 퉁퉁 두드렸다.

◇"술로 위로받았던 순간 물어보고 싶어"

주량을 물었다. 신동엽은 폭탄주 50잔을 마신다는 가수 이승철이 '맞수'라 꼽을 정도. 결혼 직후인 2008년 한 인터뷰에서 '이제 폭음은 없다. 부부 동반 모임이 좋다'던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묻자 살짝 당황한 기색이 돈다. "이래서 항상 사람이 입조심해야 돼(웃음). 가끔은 폭음을 해요. 술자리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 정도. 두 병은 살짝 아쉽고, 세 병쯤이 딱 좋아요." 탁재훈은 "그래도 나는 이 사람들보단 덜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랑 있을 땐 한 병. 여자랑 있을 땐 네 병이든 다섯 병이든…. 사실 끝도 없죠. 주량은 분위기!(웃음)"

테이블에 놓인 소주잔을 검지 끝으로 빙빙 돌리던 김준현은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를 때 소주 한 병이 든든한 친구가 됐다"고 했다. "개그콘서트 하차하고 혼란스러웠을 때 밤새도록 천천히 소주 한 병을 비웠어요. 눈물이 나면서 마음이 진정되더라고요." 3년간 연예계를 떠났던 탁재훈도 공백기를 '혼술'로 보냈다. "7080 옛날 노래들 들으면서 혼자 술을 마셨어요. (배)철수형 라디오도 자주 들으면서. '홈(Home)술' 좋아요. 마시다가 취하면 바로 누워서 자면 돼요." 신동엽은 "출연자들에게 인생에서 술이 약(藥)이 됐던 순간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배우 조진웅' 편에선 "사랑합니다"라는 건배사가 화제였다. "보통 남자는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데 서툴잖아요. 몇 번 '사랑합니다' 외쳐보니 입에 붙으면서 애틋한 감정이 생기더라고요." 김준현이 말했다. 신동엽은 "그래도 건배사는 질색"이라며 박정하다. "우리는 절대로 건배사를 안 해요. 건배사 하면 따돌림받아요(웃음)." 탁재훈도 거든다. "건배사 하면 매장당해요. 소문도 금방 나요. '어머, 쟤 건배사 하더라?' 이렇게요. 심각하면 그 소문 때문에 방송업계도 떠나야 하는…(웃음). 직장인도 건배사는 스트레스 아닌가요? 술은 편하게 마셔야지."

순간, 소주잔을 든 김준현이 "사랑합니다!"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