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할머니와의 추억

    입력 : 2017.01.11 11:00

    겨울이 되자 집 앞 숲의 무성함이 사라졌다.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더 쓸쓸해진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날씨가 영상이라 평소보다 옷을 얇게 입고 외출을 했다. 손주를 탁구클럽에 데려가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반팔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추위가 느껴졌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몸이 개운치가 않다. 생강에 파 뿌리, 배, 무를 넣고 차를 끓여 마신다. 새벽에는 전기 매트를 깔고 몸에 열을 가해 땀을 뺏다. 소금물로 코와 목에 가글을 한다. 상시 복용하는 약이 있으니 더 보태어 감기약을 먹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내게 해주시던 민간요법을 쓰고 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무의식 속에 들어 있었나 보다.

    생각이 난다. 유난히 얼굴이 하얗고 몸이 약한 나는 옆집에서 기침만 해도 내가 먼저 아프다고 했다. 그만큼 약하다는 말 일 거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가 열이 나면 우선 커다란 치마를 펼치고 쌀을 듬뿍 퍼 오셔서 됫박에 쌀을 수북이 채워 손으로 움켜쥔다. 쌀 됫박은 쌀을 푸는 바가지다. 그걸 내 이마에 얹어 아주 경건하게 뭐라 뭐라 읊으신다. 누워있는 나는 시원해지는 거 같았다. 그걸 열어보면 한쪽이 움푹 패어 있다. 그러면 할머니는 “많이 아프구나, 이젠 날 거다” 하신다. 이걸 잠밥이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도 아니다. 쌀은 부엌 항아리에서 퍼왔으니 차가울 것이고 쌀을 바가지에 채워서 흔들면 공간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다.

    그래도 열이 안 내리고 며칠씩 고생을 하면 할머니는 두 번째 의식을 치르신다. 깨끗한 그릇에 정화수를 담아 공손하게 마당 한 쪽에 있는 장독대로 가져간다. 그리고는 정성스레 두 손을 모아 비비며 간절한 기도를 바치신다. “몇 년 몇 월생 우리 손녀가 매우 아프니 제발 낫게 해주십사.” 어느 때는 나를 데리고 나가서 세워놓고 비셨다.

    배가 아프면 “할머니 손은 약손, 순이 배는 똥배.” 노래하며 배를 쓰다듬어 주연 아픈 배가 가라앉는다.

    두드러기가 잘 일어났던 나. 온몸이 가렵고 여기저기 발진이 일어나면 먼 동네 초가집 변소 지붕을 덮은 짚을 한 줌 얻어 다가 변소에 나를 세워놓는다. 짚에 불을 붙여 끄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기에 쌓인 짚으로 내 몸을 훑어 내리며 “쉐~ 우리 순이 얼른 나아라~ 쉐~." 하시던 그 의식들.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윗날 보름달이 휘영청 높게 뜨는 날이면 동네 언덕에 내 손을 잡고 올라가 경건하게 달님께 두 손 모아 손녀의 건강을 빌던 내 할머니.

    할머니 덕분에 이렇게 할머니 나이가 되도록 건강하게 사나 보다. 내게 말썽꾸러기 손자가 있어 힘들지만, 행복한 것처럼 내 할머니도 형제 중 유난히 골골대던 손녀가 있어서 그러셨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