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팥이 4개… 억세게 운 좋은 여자

    입력 : 2017.01.12 01:10

    급성신부전증 5기 김명옥씨, 모친에 이어 딸 신장 이식 받아

    김명옥(왼쪽)·장혜영씨 모녀가 활짝 웃고 있다. 휴대전화 속 인물은 김씨의 어머니 여순남씨.
    김명옥(왼쪽)·장혜영씨 모녀가 활짝 웃고 있다. 휴대전화 속 인물은 김씨의 어머니 여순남씨. /이태경 기자

    "할머니,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해요. 저도 엄마한테 콩팥 이식을 해 드렸어요."

    지난 6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 충북 괴산에 있는 외할머니 여순남(84)씨에게 전화를 건 손녀 장혜영(30)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옆에 있던 장씨의 어머니 김명옥(56)씨는 딸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올렸다. 지난 9월 엄마에게 자신의 신장 한쪽을 떼어 준 장씨는 이날 수술 사실을 외할머니에게 고백했다. 외할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콩팥을 이식받은 엄마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비밀에 부친 것이다.

    외할머니 여씨도 16년 전 딸 김씨에게 신장을 하나 떼어 줬다. 그렇게 해서 김씨는 몸에 신장 4개를 지니게 됐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33명이 신장 이식 수술을 두 번 받았다. 그중 김씨네처럼 모녀 3대가 이식 수술에 참여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한다. 수화기 너머 여씨가 "사랑하는 내 손녀, 내 딸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하자 장씨도 "할머니도 우리 엄마 살려주셔서 고마워요"라고 답했다.

    고혈압이 있던 김씨는 2000년 쓰러져 급성신부전증 5기 판정을 받았다. 양쪽 신장 기능이 10% 수준으로 떨어져 급히 신장을 이식받아야 했다. 뇌사자의 신장을 기증받으려면 3~4년을 기다려야 했다. 남편은 B형 간염 때문에 이식 수술이 어려웠고 딸 장씨는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러자 당시 60대 후반이었던 친정엄마 여씨가 수술대에 올랐다. 장씨는 "할머니와 엄마가 나란히 병원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가는 모습을 봤는데 그땐 무슨 일인지는 잘 몰라 그냥 두 분의 손을 꽉 잡았었다"며 "할머니가 '혹시나 엄마가 또 아프면 꼭 살려줘야 한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신장을 이식받은 김씨는 곧 건강을 되찾았다. 아침 저녁으로 일하며 딸 혜영씨를 결혼시켰고 5년 전 첫 손자도 봤다. 하지만 지난 6월 김씨의 건강이 다시 악화됐다. 신장 기능이 5%대로 낮아져 위태로운 상태가 됐다. 장씨는 2000년 엄마와 외할머니가 수술대에 누웠던 날을 떠올리며 수술을 결심했다. 장씨는 "수술 후 외할머니가 건강하게 사시는 걸 봤기 때문에 이식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력을 잃어가는 엄마를 살리고 싶었어요."

    모녀 3대(代)는 오는 설에 만날 예정이다. 이들의 주치의는 "세 사람 모두 정상적인 신장 기능 수치를 보이고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김씨는 "나는 사랑하는 엄마와 딸을 동시에 몸속에 지닌 억세게 운 좋은 여자"라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