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 코앞인디… 까맣게 다 타부렀어"

"하나라도 더 건져야제…." 15일 오전 7시 50분쯤 전남 여수시 교동 수산시장. 60대 상인 두 명은 화마(火魔)가 휩쓸고 지나간 점포 내 수족관에서 손바닥만 한 전복을 잇따라 바구니에 담았다. 두 상인은 "곧 명절 대목인데 이게 웬 날벼락이라요"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지난해 11월 30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지 한 달 보름 만에 또 다시 전통시장에서 큰 불이 났다. 이날 오전 2시 21분쯤 여수수산시장 1층 활어횟집 내부에서 발생한 불은 주위 점포로 삽시간에 옮아 붙었다. 이 불로 활어와 건어물 등을 파는 점포 125곳 중 116곳이 전소하거나 일부 불에 타고 그을리는 손해를 입었다. 완전히 타버려 뼈대만 남은 점포는 58곳이었다.

시장 경비원 김모(60)씨가 2시 28분쯤 119에 신고했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오전 4시 23분쯤 진화했다. 이른 새벽이라 인명 피해는 없었다. 소방당국은 물품 피해액을 5억2000만원으로 추정했으나, 상인들은 50억원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전쟁터 폐허처럼 변한 시장 1층에는 팔뚝만 한 농어와 광어 등이 바닥에 널려 있었고, 검게 탄 멸치 상자는 옆구리가 터져 내용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민어·조기·가자미 등 건어물도 새까만 화재 잔해와 뒤엉켜 있었다. 경찰이 화재 현장 출입을 막자 상당수 상인은 통제선 바깥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오전 10시쯤 만난 김상민(60) 상인 대표는 "전국 각지로 보낼 설 제수용 건어물을 쌓아뒀는데 잿더미가 됐을까 봐 속이 탄다"고 말했다. 상인 주계식(56)씨는 "모친에 이어 50년 가까이 장사하면서 화재는 처음"이라며 "주문한 물건을 제때 받을 수 있겠느냐는 전국 각지 손님의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상인 김모(50)씨는 "어제 들여놓은 광어·농어 등 100여 마리가 수족관에서 폐사한 것 같다"며 "설 대목용 수산물을 창고에 보관하는 중에 불이 나 손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1969년 개장한 여수 수산시장은 3층, 연면적 2656㎡(803평)에 활어·건어물·조개류 등을 판매하는 점포 125곳이 들어서 있다. 방문객 70％가 관광객일 만큼 여수 관광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매주 금~일요일 운영하는 야시장이 인기를 끈다. 설 명절을 대비해 평소보다 물건을 두 배 이상 많이 쌓아둬 피해가 컸다고 한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화재가 전기 누전으로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 1층 횟집에서 화재의 원인이 된 끊긴 전선을 찾아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밀 감식할 예정이다. 소방당국은 "화재 당시 물을 뿌리는 천장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했으며, 화재경보음도 정상적으로 울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