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원한 마당놀이 한판" "어디서 본 듯 어색한 짜깁기"

입맛이나 패션 감각도 제각각인데 영화 취향이 같을 순 없다. 친구와 연인, 가족끼리 기분 좋게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막상 나올 때는 티격태격 말다툼한다. 해결책이 없을까. 조선일보 두 영화 기자가 나섰다. 세대와 성별, 취향에 따라 반응이 극명하게 나뉠 영화를 골라 관객들 작품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입씨름을 대신 벌여준다. 설 연휴 최대 기대작인 '더 킹'이 첫 표적이다. 정우성·조인성·류준열의 호화 캐스팅으로 18일 개봉 이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장죽 꼬나물고 거드름 피우다 각시의 엉덩이를 지분대는 양반, 온갖 상소리로 나리들을 비꼬는 머슴. 현실을 풍자한 농지거리지만, 청중이 속 시원해 박장대소할 때 '마당놀이'는 완성된다. '더 킹'은 그런 마당놀이 한판처럼 걸지고 질벅하다.

만날 쌈박질로 날 새우던 순천 촌놈 '박태수'(조인성)는 좀도둑에 양아치인 아버지가 검사에게 걸려 개잡듯 두드려 맞는 걸 보며 깨닫는다. "저게 진짜 힘이다." 서울법대 나와 사법고시에 붙었지만 '빽' 없는 태수의 자리는 시골 검사. 하지만 처음 선배 검사의 청탁을 받아 미성년자 성폭행범을 풀어준 대가로 권력자들의 파티에 초대받는다. 당대의 검찰 칼잡이 '한강식'(정우성) 부장검사는 말한다. "태수야, 내가 곧 역사야. 촌스럽게 정의, 자존심 그런 것 좀 버리자. 그냥 권력 옆에 있어. 요즘 애들은 왜 역사 공부를 안 하니?" 그 밑에서 태수는 출셋길을 달리고, 고향 친구인 목포 조폭 넘버2 '최두일'(류준열)이 엮인다.

현대사 주요 장면과 권력자의 영욕을 연속 화면으로 내보내는 도입부부터 영화는 판타지 마당극임을 숨기지 않는다. 태수의 내레이션을 따라 회고담처럼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는 민감한 현실을 건드릴 때 비판 순도를 낮추는 안전장치. 검찰 사무실 한편 음침한 문을 열면 연예인 스캔들과 권력형 비리가 꽉 찬 문서고가 '짠' 나타나고, 검사들은 댄스곡에 맞춰 아이돌 그룹처럼 춤을 춘다. '관상'(2013)으로 913만 관객을 모은 한재림 감독, 논란은 피하고 가려운 곳 박박 긁는 상업적 감각에 물이 올랐다. 감독은 "탈 쓰고 왕 노릇도 하고, 깔깔대고 비웃다 보면 털어버리고 희망을 갖는 그런 영화"라 했다. 감독은 영화 막판에 요즘 젊은 관객이 듣고 싶어 할 만한 대사를 심어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지 않으면 당한다. 잊지 마라. 당신(국민)이 세상의 왕이다."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지나간 인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고 했었나."

'검사 박태수'(조인성)의 독백 위로 1990년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2002년 월드컵 장면이 빠르게 흘러간다. 영화 '더 킹'은 이 도입부 장면부터 국내외 기존 영화들을 참조한 작품이라는 걸 강하게 드러낸다. 주연배우의 독백이라는 작품 구조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좋은 친구들'을 빼닮았다. 박태수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초반부에서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친구', 타락한 검사들을 묘사한 후반부에서는 '내부자들'과 역시 스코세이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가 떠오른다. 참신함보다는 기시감(旣視感)이 강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다른 작품들을 참조한 흔적이 바느질로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뚜렷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영화 전체가 한 편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편을 이어붙인 듯 이물감(異物感)이 가시지 않는다. 한재림 감독이 전작 '관상'에서 역사극의 바탕 위에 희극성과 비극성을 솜씨 좋게 버무렸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정우성과 조인성, 조폭 역할 류준열까지 스타 3명을 기용한 초호화 캐스팅도 흥행이 아니라 완성도 측면에서는 오히려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채로운 분산투자보다는 과잉 중복 투자에 가깝다는 의미다. 조인성은 '비열한 거리'의 주인공에서 직업만 검찰로 바꿔놓은 것 같다. '검사 한강식' 역의 정우성은 전작 '아수라'에서 자신의 상대 역이었던 검사 역할을 맡은 것 같다.

최근 사회 비판적인 한국 영화들처럼 이 작품 역시 폭력적인 장면이 꽤 많다. 현란하고 자극적인 스타일로 인기 영합주의(포퓰리즘)로 치닫는 빈약한 이야기를 감추려는 건 아닐까. 부패와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라고 해서 완성도와 관계없이 면죄부를 받는 건 아니다. 이 영화 역시 그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