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에서 정열의 플라멩코를 경험하다

    입력 : 2017.02.06 10:27

    [스페인-포르투갈 답사기] [6] 정열의 플라멩코 도시 세비야

    리스본을 마지막으로 포르투칼 투어를 마치고 다시 스페인으로 들어와 정열의 집시 춤 '플라멩코'의 도시 세비야로 향하였다.

    이렇게 나라와 나라 사이를 아무런 제재 없이 드나드는 게 신기했다. 그저 충남에서 전북으로 접어들듯이 리스본에서 버스로 6시간 걸려 이동한 세비야. 언제 스페인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채 도착하고 보니 어두워진 저녁이었다.


    세비야 (Sevilla)

    버스에서 내려 그리 크지 않은 극장으로 들어가 좌석에 앉으니 음료수나 와인을 한 잔씩 주면서 기다리게 하였다. 이윽고 시간이 되었는지 200석 남짓한 객석이 가득 찼고, 서너 평쯤 되어 보이는 무대에는 기타를 든 두 남자가 먼저 자리를 잡고 조명이 켜지더니 경쾌한 반주와 함께 남자 가수 1명과 기타리스트 2명의 연주와 노래가 시작되니 이내 극장 내부는 흥겨움이 꽃처럼 피어오른다.

    이어서 눈에 익은 의상을 입은 무희들이 등장하여 춤을 추면서 공연은 시작되었다. 플라멩코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민요와 향토무용, 그리고 기타 반주를 동반한 민족예술로 '정열의 나라 스페인'을 말할 때 투우와 함께 손꼽히는 춤이다. 이날의 공연은 뮤지컬 카르멘의 스토리를 축약하여 플라멩코 댄스로 진행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단편적인 댄스동작을 싱글로, 혹은 단체로 추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1시간 반가량 진행되었다.


    황당한 황금의 탑 (Torre del Oro)

    스페인 4대 도시에 손꼽히는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로 과달키비르 강을 끼고 있는 내륙의 항구도시이다.

    로마시대 이래로 많은 외침과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 온 세비야는 이슬람이 지배했을 때는 그들이 수도로 운용하던 곳이며 15세기 말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에는 무역의 기지로 전성기를 누림과 함께 스페인의 대표화가 '벨라스케스'가 배출된 곳이며 세비야의 이발사와 카르멘, 돈조바니 등의 유명 오페라의 무대가 되는 등 예술이 꽃피운 곳이기도 하다.

    황금의 탑은 1221~1222년 사이에 적 군함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강어귀에 세워진 12각형 모양의 건물로 한때는 탑의 돔을 덮었던 황금 타일이 햇빛에 반사되어 '황금의 탑'이라고 불리었으나 지금은 황금의 흔적은 찾아볼 길 없이 다소 낡고 남루해 보이기까지 하여 '황당한 유적지'라는 관광객들의 조롱 섞인 별칭이 붙어 있으며 현재 해군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페인 광장(Sevilla Plaza de Espana)

    스페인은 가는 곳마다, 중요 도시마다 스페인 광장이 있다. 아마도 도시마다 최고의 광장을 스페인 광장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이곳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그중의 제일,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스페인 광장 전경. 우측 탑에서 바라본 좌측 탑과 중앙 건물이다.
    정면에서 본 중앙건물, 2개의 아치교로 건너가는 구조인데 관광객들은 건물 뒤편에서 진입하게 되어 있다.
    우측 탑, 좌측 탑과 대칭으로 긴 원형 회랑으로 이어진다.
    반원형 건물을 따라 칸칸이 묘사한 스페인 도시별 회화는 매우 다양하다. 그라나다는 이사벨 여왕이 스페인에서 이슬람을 몰아내고 국토를 회복하는 단계에서 이슬람 술탄이 알함브라궁의 열쇠를 바치며 무조건 훼손하지는 말라고 요청하는 장면을 타일로 새겼다.

    이 스페인광장은 1929년 스페인 만국박람회장으로 사용된 장소로 당시 본부 건물로 지어진 멋진 건물이 반원형으로 광장을 품고 있는데 좌·우측에는 세비아 대성당의 히랄다 탑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며 반원형 벽면을 따라 칸칸이 스페인 모든 도시의 문장(紋章)과 지도, 역사적인 사건들을 새겨 놓았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 (Parque de Maria Luisa)

    스페인 광장에 인접한 공원에 세워진 콜럼버스 탑, 하얀 대리석 기둥 위에 용맹한 사자상과 그 아래에는 항해에 나섰던 범선, 그리고 콜럼버스의 흉상이 조각되어 있다. 잠시 후 만날 세비아 대성당의 콜럼버스 묘(관)와 이어지는 기념탑인듯하다.

    스페인 광장이 들어선 이곳은 원래 산탈모 궁전이 있는 곳이었으나 1893년에 소유주인 마리아 루이사 공주가 세비야 시에 기증하면서 시 소유가 되었고, 세비야 시는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칸 박람회(Ibero-American Exposition) 개최를 앞두고 공원으로 재단장하여 현재의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됐다. 세비야를 대표하는 공원이자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손꼽히는 이곳에 지금은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페인 광장이 도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세비아 대성당(Sevilla Catedral)

    스페인 최대, 세계 3위의 성당이 세비아 대성당이다. 1위는 바티칸의 산 삐에뜨로 성당, 2위는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이라고 하며 천주교에서는 바티칸 성당보다 크게 지을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어 그렇다고 하는데 사실은 세비아 대성당의 경우 대규모 광장이 없어서 그렇지 내부 높이만 40m에 달하는 등 사실상 바티칸 성당보다 더 크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원래 이곳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곳인데 1401년 성당을 짓기 위한 회의에서 "무조건 톨레도 성당보다 커야 한다"거나 “이 성당이 마무리되면 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크고 아름답게 지어야 한다.”라는 결정을 내렸으며 그렇게 건축을 시작한 후 105년이 지난 1506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 그런데 이슬람 사원의 흔적을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고 지금도 우뚝 서 있는 대성당 종탑인 히랄다 탑(la giralda)은 12세기 이슬람교도들이 세운 34층 높이의 이슬람 탑이었으니 성당과 이슬람 사원이 혼재된 현장으로 많은 관광객이 올라가 보는 대형 탑 건물이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오렌지 정원으로 불리는 공간이 있다. 옛날 이슬람교도들이 만든 공간인데 분수대는 그들이 기도 전에 손발을 씻는 곳이었으나 관상용 오렌지 나무와 벤치가 있는 휴식공간이 되었다. 관상용 오렌지는 따 먹으면 독성이 있다고 한다.
    근처에는 또한 세빌리아의 이발사 배경이 된 주택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들려 보곤 한다.
    이렇게 옛 유대인의 거주지였던 산타 크루즈 지구의 구시가지를 지나니 드디어 세비야 대성당이 보인다. 먼저 34층 높이의 히랄다 탑이 멀리서도 우뚝 높이 서 있어 금방 알 수 있었으며 주변에는 이미 입장을 기다리는 많은 관광객이 줄 서서 기다리는 중이다.
    웨딩 촬영 중인지 드레스 입은 한 쌍의 남녀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사랑의 연출에 열중한다.

    한참을 기다려 들어간 성당은 내부를 대충 돌아보는 데만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규모인지라 상세하게 전하기는 쉽지 않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거대하고 화려한 금(金)의 제단과 그 옆에 있는 은(銀)의 제단, 그리고 성가대석 등 성당 필수 시설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압도하는 화려함이며, 특히 콜럼버스의 묘는 많은 관람객이 몰려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다만 히랄다 탑에 올라가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대성당의 중앙제단은 예수의 생애를 조각으로 표현한 조각을 후면에 세웠는데 높이와 폭이 각각 27m, 18m에 달하는 규모이며, 실제로 20톤에 달하는 금이 들어가서 금(金)의 제단이라고 부른다. 1480년부터 1560년까지 무려 80년이나 걸려 제작한 세계 최대규모의 제단이다.
    중앙제단뿐 아니라 성가대석과 파이프 오르간 등의 모습도 장관이었으며 높이 40m에 달한다는 내부 천장은 올려다보기에도 벅차건만 금빛으로 화려한 장식과 그 아름다움은 천상의 세계를 표현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될 듯 하다.

    콜럼버스의 묘(Sepulcro de Colon)

    콜럼버스는 죽은 지 3년 후 아들에 의해 세비야로 옮겨졌다가 1537년에 발견된 유언장에 '내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내용에 따라 도미니카로 이전되었다. 그러다가 1795년 도미니카를 놓고 벌이던 프랑스와의 전쟁이 불리해지자 콜럼버스 유해는 다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로 옮겨졌는데 1898년에 쿠바가 독립하자 스페인 정부는 이곳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겨 영구 안장하였다.

    콜럼버스는 자신에게 지원을 끊고 냉대를 하는 스페인에 반(反)하는 감정으로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면서 본인이 발견한 신대륙 아메리카의 도미니카 공화국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던 것인데 사후에도 이렇듯 복잡한 항해를 계속한 것이며, 그리하여 지금 콜럼버스의 유해는 이곳 세비야 대성당과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 산타마리아 성당 두 곳에 묻혀있고 서로 자기들이 진짜 유해지라고 주장하면서 최근에는 DNA 검사 운운하기에 이르렀는데 출생도 복잡한 그는 죽어서 시신마저도 분명치 않은 사람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스페인으로 돌아온 콜럼버스의 유해는 그의 공로를 인정한 스페인 정부가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유언을 지켜주려고 당시 스페인을 구성하는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4명의 왕으로 하여금 그의 관(棺)을 짊어져 발이 땅에 닿지 않게 하였으니 죽어서도 하늘에 떠 있는, 세상에 유례없는 무덤이 된 것이다.

    콜럼버스의 유해를 짊어진 네 사람은 당시 스페인을 구성하던 4대 왕국의 왕들로 콜럼버스를 지지했던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들은 고개를 들고 앞에 서 있고, 반대했던 나바라, 아라곤 왕들은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각각 그들의 옷에 해당 왕국의 문장을 그려 넣었으며, 앞에 선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속설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쓰다듬어서 반짝거리고 있다.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에서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만났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에서는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는 콜럼버스. 그의 주검은 상상을 초월한 모습으로 대성당 안에 모셔져 있었으며, 그의 아들은 성당안에 평장(平葬) 형태로 묻혀 있었다.

    신대륙 발견으로 유럽 각국이 대양 국가를 지양하면서 식민지를 개척하고 값싼 노예와 엄청난 부(富)를 안겨주는 물꼬를 튼 콜럼버스는 서양사에서 영웅적이며 추앙받는 모험가인지는 모르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무지막지한 고통과 절망, 죽음보다 더 힘든 삶을 안겨준 거대한 재앙이지 않았을까? 그 이후 무자비한 정복자들에게 수십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식민지 노예로 살아야 했던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는 치가 떨리는 콜럼버스가 아닐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그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였지만, 자신이 발견한 곳이 인도인 줄 알았으며 그래서 그쪽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작 그 후에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서 그곳이 인도가 아님이 밝혀져 신대륙의 이름은 아메리카로 명명되었으며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겨우 컬럼비아라는 나라 이름 정도로 남아 있다.

    그래도 알고 보면 너무 쉬운 일을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면서 그를 지혜의 인물로 꼽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