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카·메르스 등 질병 백신 세계 첫 도전

SK케미칼은 올해 대상포진 백신 출시를 앞두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자체 개발한 대상포진 예방 백신 'NBP608'의 허가를 신청했다. 전 세계에 미국 MSD의 '조스타박스'만 나와 있는 대상포진 시장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대상포진은 몸안에 잠복하던 수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성인 가운데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해 11월 성인용 디프테리아·파상풍 예방백신(Td백신)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 Td백신은 국가 필수 예방접종 대상 백신 중 하나이지만 국산 백신이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다. 녹십자는 올 하반기부터는 국산 Td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백신 국산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아 대상 백신에서 성인들을 위한 고가(高價) 프리미엄 백신까지 국산화 열기가 뜨겁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늘어나면서 백신 자급화가 국가 의료 체계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 여상구 연구관은 "'백신 주권(主權)'을 가져야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같은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의료비 부담이 증가한 것도 질병을 사전에 막는 백신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독감 백신 이어 프리미엄 백신에서 성과

현재 국내에서 접종되고 있는 백신은 필수 예방접종 백신 19종을 포함해 모두 28종이다. 이 중 국산 백신은 2009년 7종에서 올해 14종(예상)으로 늘어났다. 식약처는 27일 "백신 국산화 비율을 올해 50%로 높이고 2020년까지는 71%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백신 개발사에 대한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하는 한편 백신 생산 시설 투자를 세액 공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국내 제약사들은 가장 먼저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개발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 녹십자는 2009년 한국 최초로 독감 백신을 개발했으며, 지난해에는 4가지 독감 바이러스를 한 번에 예방하는 백신(이하 4가 독감 백신)을 개발해 출시했다. 녹십자는 이에 앞서 2015년 조류인플루엔자(AI) 백신을 허가받기도 했다.

SK케미칼도 지난해 세계 최초로 계란이 아닌 동물 세포 배양으로 만든 4가 독감 백신을 출시했다. 이 방식은 백신 생산 기간을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다.

SK케미칼은 독감 백신에 이어 고가 프리미엄 백신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김성우 SK케미칼 부장은 "4000억원을 들여 백신 생산 시설을 신설해 새 제품을 생산할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이를 기반으로 대상포진에 이어 자궁경부암 백신의 임상 1·2상 시험도 진행 중이다. 이 백신은 MSD와 영국 GSK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세계 최초 백신에도 도전

국내사들은 세계 최초 백신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CJ헬스케어는 수족구병 백신에 도전하고 있다. 수족구병은 장내 바이러스로 아동의 입안과 손발에 물집이 생기는 병으로, 환자가 매년 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치료제나 백신이 없다. 회사는 두 가지 바이러스를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백신으로 개발 중이다.

일양약품은 최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지카바이러스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일양약품은 지난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제공한 지카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실험해 8가지 백신 후보 물질을 찾았다고 밝혔다. 진원생명과학은 모(母)회사인 미국 이노비오와 함께 지카바이러스 백신을 환자에게 임상시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만 국산 백신 개발이 인플루엔자나 대상포진, 자궁경부암처럼 환자가 많거나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백신 위주로 진행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새로운 백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