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커피나무를 길러 커피를 만들다

    입력 : 2017.03.08 10:54

    창고로 쓰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한동안 쓰지 않던 차 포트를 꺼내 왔다. 언젠가 몸에 좋다는 차를 내 손으로 우려먹겠다고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서 사 왔었다. 몇 번인가 설록차니 보이차니 하는 것들을 우려 내 먹다 어느 순간 창고 방으로 들어 가 버린 차 포트이다. 그만큼 차는 내게 있어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커피를 좋아하긴 해도 나는 소위 다방 커피 맛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예전에야 커피 한 스푼에 설탕 두 스푼 프림 두 스푼을 타서 마셨다. 내 나름대로 황금 비율이라 생각하며 마셨다. 지금이야 누가 그렇게 타 먹는가. 다방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 기호에 맞추어 나온 막대 모양의 봉지로 나오는 믹스 커피를 타서 마시면 그만이다. 그 맛에 철저히 길들여진 나는 동창들을 만나면 가끔 ‘난 원두커피여야 해’, ‘ 난 아메리카노 먹을 거야’ 하는 친구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 쓴 것을 먹지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내가 차 포트를 꺼내 온 것은 커피를 내리기 위함이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커피콩을 한 번 볶아 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생긴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여고 시절, 국어 교과서에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에나오는 분장 중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라는 문장 때문이다. 아마 지금이라면 그 커피 냄새가 어떤 냄새일까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흔하디흔한 커피가 내 여고 시절엔 아주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다. 그러니 내게 있어 커피는 먼 이국적인 환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커피를 볶다니, 그때는 커피콩이란 단어조차 모르는데 무엇을 어떻게 볶는지도 모르고 그 냄새가 어떠한지 모르니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오 년 전에 우연히 꽃집 앞을 지나다가 커피나무를 발견했다. 그 커피나무가 얼마나 자라는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덥석 사 들고 집에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커피나무의 수종은 아라비카라는 이름을 가진 커피나무였다. 이름도 모르고 사온 커피나무를 식구들은 집에서 어떻게 키우느냐고 어이없어 했지만 그저 물주면 크겠지 싶어 햇빛 잘 드는 곳에 두고 키웠다.

    그 커피나무가 겨울이 되면 꽃봉오리가 앉고 봄이 되려는 3월 중순쯤이면 하얀 꽃을 피웠다. 꽃향기가 얼마나 짙고 향기롭던지 꽃이 피는 동안 집안에는 라일락 꽃향기를 닮은 커피 꽃향기로 가득 찼다. 꽃이 지고 나면 당연히 초록색 콩 모양의 열매가 꽃이 진자리 마다 조로록 달리고 빨갛게 익어 갔다. 따기가 아까워 그냥 두었더니 빨간 열매와 초록색 열매가 같이 달려있기도 한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냥 그렇게 둘 수 없어 결국은 따서 작은 유리병에 모아 두곤 했었다. 그렇게 모은 커피콩을 바라만 보다가 며칠 전에 커피콩을 볶기로 결단을 내렸다.

    커피콩은 당연히 기계가 있어야 볶고 간다고 생각했었다. 모아 놓은 커피콩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내겐 너무 멀다고 생각했던 커피 콩 볶기는 뜻밖에 간단히 해결되는 일이 생겼다. 어느 날 본 TV 프로그램 때문이다. 커피 생산지인 나라의 다큐멘터리에서 커피 볶는 것을 본 탓이다. 커피콩을 생산하는 나라 사람들은 그냥 프라이팬에 볶아 갈아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이었다. 그 거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싶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우리네 깨 볶는 풍경이 아닌가.

    커피콩을 볶았다. 커피콩을 볶으며 냄새를 맡고 또 맡아도 내겐 낙엽 타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코가 막혔는지 아니면 커피 콩이 올해 산이 아니라 묵은 탓인지 그것은 알 도리가 없지만 볶은 커피콩을 믹서에 갈자 진한 커피 향기가 집안에 가득 퍼졌다. 혼자 차 포트에 볶은 커피 가루 한 스푼을 넣고 커피를 내렸다. 컵에 따라 한 모금 마시자 커피 향기가 몸 안 가득 스며들었다. 커피 한 스푼에 설탕 두 스푼 프림 두 스푼을 지나 막대믹스 커피에서 원두커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볶은 커피는 대환영을 받았다. ‘이거 진짜 유기농 커피 아냐’, ‘우 ~ 와~~’, ‘아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대’ 며느리도 딸아이도 탄성을 터트렸다. 너도나도 한 번 먹어보겠다고 줄을 섰다.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신기함에 한마디씩 했다. 커피나무를 집안에서 기르고 그 열매인 커피콩을 볶아 갈아 내려먹는 신기함에 박수를 보냈다. 커피콩을 갈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 옆에 서서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기에 커피가 맛있었을 것이다. 마시기도 전에 이미 머릿속에는 정성 가득한 그 마음으로 전해지는 맛이 맛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을 것이다.

    커피는 두 가지 맛이다. 쓴맛과 단맛이다. 그것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좋은 향기를 내 뿜는다.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쓴맛, 단맛을 무수히 겪으며 살아왔다. 그 단맛, 쓴맛을 적절히 버무려 내 나이다운 그윽한 향기를 뿜어낼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점점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모양이다. 커피를 마시며 추억을 떠올리고 내일을 생각한다. 더 좋은 향기를 뿜어내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도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