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쓰레기 더미 속의 액자와 할머니

    입력 : 2017.05.17 09:57

    애지중지 아끼며 사용하던 것도 쓸모가 없거나 어울리지 않게 되면 버리게 된다.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면 다른 사람이 버려주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버려야 할 것이 늘어난다.

    인생 2막 삶을 거추장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일과 돈, 권력욕 등 사회적 출세를 위하여 그리고 가족을 위하여 매달리면서 덕지덕지 붙어온 욕심이 그 대표격이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자기 인생은 뒷전에 두기 일쑤다. 자식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늘 조연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고 싶은 일도 미뤄두었고 꿈도 접었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그 흔적이 주름살로 새겨졌다.

    부모를 공경하고 보살피며 자식을 애지중지 내리사랑으로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생각과 행동도 그리고 삶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마처세대'라는 신조어가 이를 잘 나타내준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에게 버림받는 ‘처음 세대’란 말의 줄임이다.

    어느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나이 든 부모를 누가 모셔야 하느냐?'라는 설문을 했다. '나라가 모셔야 한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나라를 위하여 청춘을 다 바쳐 일했으니 당연히 나라가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논리인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어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나이 들고 병이 들면 응당 요양원이나 양로원으로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주변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온갖 정성으로 부모 책임을 다한 자식 사랑, 그 자체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부모라고 생각한다.

    동네 어느 집 대문 앞에 내어 놓은 쓰레기봉투와 재활용품 더미 속에 인물 그림 액자 한 점이 눈에 띈다. 한눈에 보기에도 빛이 바랬다. 벽면에 곱게 걸렸던 액자는 낡아 어울리지 않게 되자 주인은 쓰레기 더미 속에 내다 버렸다. ‘마처세대’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그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가까운 미래에 닥칠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라고. 버려진 액자, 베이비붐 세대의 자화상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