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레인맨' 첫 홀 이글로 데뷔

    입력 : 2017.06.16 03:03 | 수정 : 2017.06.16 03:11

    [발달장애 이승민, 첫 프로무대 1라운드 이븐파]

    드라이버·아이언·웨지 모두 정확성은 프로 정상급 수준
    초반엔 퍼팅에서 실수 잦았지만 후반 갈수록 안정적인 플레이

    "어, 들어갔어. 샷 이글이야!"

    10번홀 그린에서 제자의 샷을 지켜보던 김종필(54) 코치가 공이 홀로 들어갔다는 손짓을 반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공을 치는 옆쪽에 서 있던 어머니 박지애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하늘에서 주신 선물인가봐요"라고 했다.

    15일 충남 태안의 현대더링스 골프장 B코스(파72)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카이도 골든 V1오픈 1라운드. 이날은 자폐성 발달장애 3급인 이승민(20)이 1부 투어 데뷔전을 치르는 날이다. 그는 지난 2일 발달장애 골퍼로는 처음으로 KPGA 1부 투어 프로 선발전을 통과했고, 주최 측 초청 선수로 이번 대회에 나섰다. 그는 다섯 살 정도 지능을 지녔다고 한다. 182cm, 68kg의 약간 마른 체격인 그는 얼핏 보면 보통 선수와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말투는 어린아이에 가깝다.

    자폐성 발달장애 3급인 이승민(오른쪽)이 15일 KPGA투어 데뷔전을 치렀다. 11번홀에서 퍼팅라인을 살펴보고 있는 이승민과 김봉섭 캐디. KPGA 1부투어 회원인 김 캐디는 이승민과 같은 연습장에서 훈련한 인연으로 그의 골프 가방을 멨다.
    자폐성 발달장애 3급인 이승민(오른쪽)이 15일 KPGA투어 데뷔전을 치렀다. 11번홀에서 퍼팅라인을 살펴보고 있는 이승민과 김봉섭 캐디. KPGA 1부투어 회원인 김 캐디는 이승민과 같은 연습장에서 훈련한 인연으로 그의 골프 가방을 멨다. /KPGA

    이승민은 참가 선수 156명 중 가장 마지막 조인 52조(3인 1조)로 오후 1시 40분 출발했다. 파5홀인 10번홀(547야드)에서 데뷔샷을 날렸다. 이승민의 캐디는 KPGA 1부 투어 회원인 김봉섭(30)이다. 같은 연습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이승민이 일본 투어 퀄리파잉스쿨 2차전에서 4라운드 동안 14언더파를 칠 때도 가방을 멨다. 어머니가 "참 고마운 형"이라고 하자, 김봉섭은 "승민이가 잘 따라서요"라고 했다.

    이승민의 1부 투어 첫 티샷은 강한 맞바람을 뚫고 페어웨이 한가운데 떨어졌다. 같은 조 박영규, 주혁 그리고 그들의 캐디 모두 "굿샷!"을 외치며 격려했다.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도 페어웨이. 그리고 100m를 남겨두고 맞바람을 감안해 피칭으로 친 세 번째 샷이 홀을 30㎝쯤 지나치더니 백스핀이 걸리면서 홀 쪽으로 향했다. 공은 홀을 빙그르르 돌면서 떨어졌다.

    프로 데뷔 첫 홀을 샷 이글로 장식한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이승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그를 6년째 지도하는 김종필 프로는 "승민이는 골프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믿고 따르는 사람의 말은 100% 그대로 받아들여요. 골프라는 게 스윙 중에도 마음이 바뀌는 건데 조금도 의심이 없어요"라고 했다. 김 프로는 장하나, 허윤경 등 정상급 선수들도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실수도 금방 나왔다. 11번홀(파4)에서는 티샷이 벙커에 빠져 보기를 했다. 12번홀(파3·197야드)에선 맞바람을 너무 크게 계산해 티샷 OB(아웃오브바운즈)가 났다. 4번 아이언이 적당했는데 하이브리드 클럽(22도)을 잡았다고 했다. 이승민과 캐디 둘 다 1부 투어 초보라는 표가 났다. 그런데도 이승민은 캐디를 원망하거나 투덜거리지 않았다. 그저 빙그레 웃더니 다음 홀로 향했다.

    그는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 등 샷의 정확성에선 정상급이었다. 바람이 부는데도 놀라운 집중력을 유지했다. 그는 티 위에 공을 놓고 두 번 빈스윙한 뒤 어드레스에 들어가 세 번 손목을 가볍게 푼 뒤 샷을 하는 자신만의 절차를 철저하게 지켰다.

    하지만 경기 초반 몇 차례나 아쉬운 퍼팅을 했다. 14·15번홀에서 1m 남짓한 버디 퍼트를 놓쳤고 17번홀에서 보기를 했다. 하지만 점점 그린 위 플레이도 익숙해지더니 후반 3번홀에선 11m, 4번홀에선 4m 버디 퍼트를 넣었다. 그는 7번홀 보기를 9번홀 버디로 만회하며 이븐파 공동 69위로 1라운드를 마쳤다. 영화 '레인맨'에서 자폐증이 있는 더스틴 호프먼은 놀라운 숫자 기억 능력을 지니고 있는 역할로 나온다. 필드 위의 이승민은 어떤 상황에서도 '교과서대로' 하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 파워가 부족하고 그린 위 플레이가 서툴긴 했어도 가능성이 크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주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에서 준우승했던 이정환이 6언더파 66타로 1라운드 단독 선두에 올랐다. 이근호와 김태우는 공동 2위(5언더파)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