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코너] 대학가 성추문 폭로엔 페북보다 대자보

    입력 : 2017.06.19 03:03

    고발·해명 잇따라 붙어
    소셜미디어선 금방 잊히지만 훨씬 파괴력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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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후문 게시판에 학내 성추행 사건을 폭로하는 대자보(大字報)가 연이틀 붙었다. 지난 12일 모 학과 여학생들이 같은 과 남학생의 강제추행 사건을 고발하는 2장짜리 익명의 대자보를 내걸었다. 그다음 날엔 또 다른 학과 여학생들이 같은 과 남학생의 성추문 폭로 대자보를 게시했다. 그리고 15일엔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 중 한 명이 5장짜리 해명 대자보를 붙였다. 결국 15일 고려대 후문 게시판 대자보 22장 가운데 9장이 성추행 폭로와 해명에 관한 것이었다. 재학생 심민섭(25)씨는 "정치·사회 문제 관련 대자보는 인기가 없는데, 성희롱 관련된 것은 읽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최근 대학 대자보가 성추문 폭로의 장(場)이 되고 있다. 대자보는 1980년대 들어 대학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언론 자유가 억압받던 시절,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의견을 밝히는 수단이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하면서, 대자보도 점차 사라졌다. 그러다 최근 학내 사건·사고를 터뜨리는 창구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여학생이 성희롱 당했다고 폭로하는 대자보가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에 붙었다. 지난 2월 청주교육대학교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있었던 선배들의 추태를 고발하는 대자보가 게시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성추행 등 사건·사고를 이슈화하는 데는 인터넷보다 대자보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한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는 누구나 쉽게 글을 올리는 만큼, 그만큼 빨리 잊힌다는 것이다. 대자보를 쓴 경험이 있는 대학생 이모(26)씨는 "내용보다 성추문이 대자보로 나붙었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가 되기 때문에, 사건 폭로는 대자보가 훨씬 파괴력 있다"고 말했다.

    '대자보 폭로'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5월 부산 동아대 교수가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대자보가 붙었고, 아 사실이 뉴스로 보도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손모(35) 교수가 결백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조사 결과 성추행 교수는 다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