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는 식물도감… 생기 도는 주변 상권

[이래서 안 좋다]

강한 빛 못 견디는 꽃·나무 시들고 식재목록 228종 중 10% 이름 틀려
곳곳 균열 보수 공사에 통행 불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3년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완벽주의자다. 깨알같이 꼼꼼히,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완벽주의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완벽주의' 시장의 597억원 짜리 역작(力作)인 서울역 고가공원 '서울로7017'(이하 서울로)이 지난 20일로 개장 한 달을 맞았다. 한 달 만인 지난 20일 오전 다시 걸어본 서울로는 '완벽함'과 거리가 멀었다. "살아 있는 식물도감을 보여주겠다"던 의도와 달리 '말라가는 식물들의 도감'이 돼 있었다.

설계자인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 마스는 식물을 과(科)별 이름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배열했다. 서울 시민이 다리를 걸으며 식물 이름을 익히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시 담당자들은 설계자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전국 수목원을 뒤져 꽃과 나무를 수배해 왔다. 식생이 아니라 이름에 맞춰 구해놓다 보니 콘크리트 고가에서 강한 빛을 견뎌야 하는 생장 조건에 맞지 않는 품종이 많았다. 이날 기자와 함께 서울로를 걸은 이창석 전 한국생태학회장(서울여대 교수)은 "이곳 환경은 온대 낙엽활엽수림대의 석회암 지대와 비슷하다"며 "저지대 습지나 북쪽 고지대에서 자라야 하는 식물이 수분 부족 스트레스와 광(光) 과다 스트레스로 죽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운 북쪽에서 자라야 하는 자작나무, 산지 저지대 습지의 갈참나무와 습지식물인 부처꽃과 꼬리조팝나무는 땡볕 아래에서 힘겹게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자목련은 벌써 잎이 말라붙어 죽어 있었다.

이 교수는 서울로 식재 목록에 오른 228종(種) 중 명백하게 이름이 틀린 것이 10%(개량 원예종 제외)나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조팝나무가 아니라 조팝나무고, 히어리가 아니라 풍년화가 맞는다. 진달래라고 이름 붙은 것은 품종이 개량된 영산홍이다. 미국산 설탕단풍엔 고로쇠나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다리 곳곳의 균열은 시민을 불안하게 한다. 지름 1m 남짓한 보리수나무 화분에는 10~30㎝ 길이 균열이 20개 가까이 보였다. 고가 오른쪽 끝인 회현동 남대문시장 쪽부터 걸어 보니 약 5m마다 금이 간 자리가 보였다. 곳곳에선 아직도 공사 중이다. 양쪽 계단에서는 인부들이 철근을 조이고, 엘리베이터 앞엔 장애인용 점자블록을 깔고 있었다. 일부 화분은 마감 처리가 덜 돼 아래쪽 전선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었다.

직장인 김희영(32)씨는 "화분 주변의 금을 이대로 두면 갈수록 커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균열이 안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금이 간 부분의 하중은 아래쪽 콘크리트가 지탱해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래서 좋았다]

'사람길' 뚫리자 200만명 발길… 남대문 방문객 하루 4만명 늘어
'중리단길' 카페엔 젊은이들 몰려

서울시는 서울로 개장 한 달간 203만명이 방문했다고 발표했다. 주먹구구식 집계다. 그러나 서울로 방문객이 늘면서 인근 지역이 살아나는 것은 분명하다.

우선 서울로 양쪽 끝 만리동·중림동과 남대문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 서울역 고가는 만리동·중림동·서계동 일대 봉제 공장에서 생산된 셔츠·블라우스·원피스 등을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에 배달하는 물류길이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고가 통행이 금지된 2015년 12월 서울시청 앞에 모여 '고가 폐쇄 결사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서울로라는 새 '사람 길'이 뚫리면서 남대문시장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남대문시장 방문객은 서울로 개장 이전보다 하루 평균 4만명 이상 늘었다. 개장 이후 하루 21만6000명이 방문했다. 22일 서울로를 지나던 최성태(72)씨는 "서울로를 걷다가 남대문시장까지 둘러보게 됐다. (남대문시장에) 20년 만에 와봤다"고 말했다.

고가 서쪽 끝인 중림동 일대는 젊은이와 외국인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로에서 지하철 2·5호선 충정로역까지 500m 남짓한 이 구간은 '중리단길(중림동+경리단길)'로 불린다. 골목골목마다 젊은 감각의 카페와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엔 인근 직장인이 몰려 장사진을 이룬다. 유동 인구가 늘면서 상가 임대료와 권리금도 1년 전보다 1.5배 이상 뛰었다. 지난 주말 대구에서 올라와 친구와 서울로를 찾은 박현빈(26)씨는 "고가 위가 뜨거워 짜증이 났는데, 중리단길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가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여름 더위에 고가가 인기를 잃으면 상권이 움츠러들 우려가 있다. 서울시는 서울로를 직장인과 시민을 위한 문화·휴식 마당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노천 보드게임 카페를 무료로 운영한다. 사전 접수를 통해 뽑힌 가족과 연인 두 팀에 사진사가 서울로와 서울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서울로 사랑사진관' 행사를 연다. 시민 누구나 장미광장에 마련된 부케와 화관(花冠) 등 소품을 들고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서울로엔 재미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