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하지 감자를 캐다

    입력 : 2017.07.11 10:13

    아파트 옥상 상자 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사실 심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트에 갔다가 채소 코너에 들렸는데 세일 코너에서 감자를 작은 팩에 담아 할인판매를 하고 있었다. 크기라고 해 봐야 감자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만큼 작았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살구보다 조금 컸었다. 그 작은 감자가 반 이상 초록색으로 변해 있었고 감자 눈마다 싹이 자라고 있었다. 저걸 누가 사냐고, 눈살을 찌푸리고 돌아서다가 문득 저걸 사다 심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서서 감자 팩을 이리저리 뒤적인다. 싹이 더 많이 자란 감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게 이상하게 보였는지 마트에서 근무하시는 아줌마가 "다 싹이 났어요." 하며 멋쩍게 웃는다. 상품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미안한 웃음일 게다. 아니 그게 아니라고, 내가 심으려고 싹이 더 많이 난 걸 찾는다고 했더니 잠깐 기다리란다. 그렇게 사라진 아줌마는 싹이 많이 자란 감자를 비닐봉지에 담아와 그냥 가져가라고 건네주었다.

    그 감자를 가져와 잘라 심었다. 감자가 어쩌면 그리도 잘 자라는지 아파트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마다 "감자를 한 가마니는 캐겠어요." 하고 덕담을 하곤 했다. 오월이 지나자 감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예뻤다. 연한 보랏빛에 노란 꽃술을 머금고 있는 올망졸망한 꽃이 그리 예쁘고 귀여울 줄은 몰랐다. 상자텃밭 머리에 서서 한참씩 꽃을 바라보고 서 있곤 했다. 감자바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강원도가 고향인데도 한 번도 감자 꽃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감자 꽃이 피자, 옥상에서 아파트 사람들과 마주치면 감자 꽃을 따주어야 한다고 훈수들을 둔다. 그래야 감자알이 굵게 여문다는 것이다. 참 난감했다. 따 주어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따 주고 났더니 후회가 물밀 듯이 빌려 왔다. ‘그래, 감자가 알이 굵어지면 얼마나 더 굵어질까?’ 싶어 다음부터는 그냥 두었다. 감자 꽃 따 주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면 ‘전 꽃이 좋아요. 꽃을 볼래요!’ 했다.

    세월 참 빠르다. 엊그제가 새해 첫날이라 덕담을 주고받았는데 벌써 일 년 중 반이 지나가고 있다. 말이 유월이지 이미 날씨는 여름이다. 한낮엔 선풍기를 켜고도 모자라 어제 들른 아들은 집에 들어서면서 에어컨부터 틀어 댄다. 나이가 들어 세월이 빨리 흘러가니 계절도 빨리 왔다 갈 모양이다. 아직은 유월인데 덥다. 6월 21일이 여름이 열리는 하지였으니 더운 게 어쩌면 정상인지 모르겠다.

    그 하지를 정확히 아는 건 어쩌면 감자라는 작물인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옥상 상자 텃밭에 심어놓은 감자가 하지를 기점으로 고개를 숙인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잎이 단풍이라도 드는 것처럼 누렇게 변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갈색빛으로 변해 갔다. 그래서 하지엔 캐라고 하지감자라고 하는 모양이다. 상자 텃밭의 감자도 캐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커다란 대야 하나를 들고 아파트 옥상으로 오른다. 이미 흙빛으로 변한 감자 가지들을 걷어내고 감자를 캐다가 아차 한다. 사진을 찍는 것을 깜박한 탓이다. 요즘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며느리에게도 아들에게도 찍은 사진을 전송하며 오라고 부른다.

    오늘 저녁엔 감자 부침개 잔치다. 강원도 내 고향에서는 감재적이라 불렀다. 믹서기에 갈면 맛없으니 구멍 숭숭 뚫린 강판에 갈아야겠지. 갈아진 감자를 체에 밭쳐 물을 좀 빼고, 밑에 가라앉은 녹말을 섞어서, 파 송송, 풋고추 송송 썰어 넣고 부쳐야지. 조금 힘이야 들겠지만 그렇게 만든 감재적은 쫄깃한 맛이 일품일 테고, 그 맛 덕택에 이렇게 만드는 감재적은 대대손손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