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감정 제거한 두뇌게임… 이게 진짜 수사 드라마

    입력 : 2017.07.17 03:04 | 수정 : 2017.07.17 06:52

    - tvN 토·일 드라마 '비밀의 숲'
    하나의 살인사건, 극 전체 이끌어… 로맨스 없이 절제의 미덕 보여줘

    삼시세평(三視世評)
    16부작으로 예정된 tvN 토·일 드라마 '비밀의 숲'은 이제 4회만을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더 깊은 숲속을 헤매는 막막한 기분이 든다. 책장을 넘길수록 의심스러운 인물은 늘어나고, 비밀은 더 복잡해지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하다.

    연기력 탁월한 두 배우 조승우와 배두나의 출연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검찰 스폰서였던 기업가가 살해당하고, 뇌 수술 후유증으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검사(조승우)가 마음 따뜻한 형사(배두나)와 함께 사건을 뒤쫓는다. 미성년자 성매매까지 얽히면서 검사장과 경찰서장, 재벌 회장이 연루된 거대 비리로 번져간다. 검찰, 경찰, 재벌이 등장하고 권력형 비리를 캐는 또 하나의 그렇고 그런 범죄 스릴러일 것 같지만 '비밀의 숲'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차별화에 성공한다.

    우선 '비밀의 숲'엔 없는 것이 많다. 로맨스가 없고, 감정 과잉이 없고, 덜렁거리며 '민폐' 끼치는 여성 캐릭터가 없다. 세상 모든 악과 부조리에 혼자 맞서는 양 정의감에 펄펄 뛰는 주인공도 없다. 매회 새로운 사건을 벌이고 수습하거나, 초반부터 범인을 밝히고 이를 비호하는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우는 전형적인 법정 드라마 전개에서 벗어나 있다. 단 한 건의 살인 사건이 극 전체를 끌고 간다.

    tvN 드라마‘비밀의 숲’에서 검사 조승우와 형사 배두나는 각각 이성과 감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tvN 드라마‘비밀의 숲’에서 검사 조승우와 형사 배두나는 각각 이성과 감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각자의 장점과 특성을 발휘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간다. /tvN
    단서를 찾고, 추리하고, 상대를 움직여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속내를 감추는 두뇌 게임이 치밀하게 펼쳐진다. 거의 모든 인물은 비밀과 약점을 숨기고 있으며 의심스럽고 모호하다. 시청자는 사건을 수사하는 입장이 되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머리를 굴려야 한다. 파면 팔수록 복잡한 인물 관계와 조직 비리의 역사가 새로운 윤곽을 드러낸다.

    범인을 쫓는 주인공이 감정이 제거된 인물이라는 설정은 드라마의 핵심이다. 그는 이성에게 품는 연정은 물론 동정심, 죄책감, 야심과도 거리가 멀다.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서류를 들여다보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건의 퍼즐 조각을 맞춰간다. 덕분에 여자 형사와 애틋하게 얽히지 않고 각자 직업인으로서 업무에 충실하며, 울부짖는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팩트'에 기반한 질문을 퍼부을 수 있다.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법정 드라마는 법원에서, 전쟁 드라마는 전장에서 그저 연애만 할 뿐인 한국 드라마판에서 '수사하는 수사 드라마'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다."(채민기 기자)

    tvN 토·일 드라마 '비밀의 숲'
    하지만 이 장점들은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새로운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대신 과거 사건을 헤집는 전개 방식으로 드라마는 때때로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감정에 전혀 휘둘리지 않아 정확한 판단만 내리는 주인공도 한계다. 매번 이상한 낌새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하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실수도, 실패도 없으니 극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과거의 상처나 사명감 혹은 공명심도 없는 그가 왜 이토록 어려운 수사를 지속해 나가는지 설득이 되지 않아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기가 어렵다."(최수현 기자)

    그럼에도 분노 과잉의 시대, 질척거리지 않는 '절제'의 미덕을 새롭게 보여준 것만으로도 합격점을 주고 싶다. "아무 감정 없는 AI 로봇 검사로 인간 검사를 대체하는 것이 정치검찰을 개혁하는 가장 빠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김윤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