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反帝反美 중단하고 싶어도 못해"

    입력 : 2017.07.17 03:04

    - '전갈의 절규' 출간 김성학 인터뷰
    北 공격적 본성 전갈에 비유… 대미 적개심 형성·강화 분석
    "김일성 등 3代 최고지도자, 美 관련 발언 놀랍도록 비슷"

    2006년 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서울 주재 기자로 일하기 시작한 김성학(스티븐 김·46)씨는 북한이 미국을 '악(惡)의 화신(化身)'이라며 비난을 쏟아내는 것을 보다 궁금해졌다. 대미(對美)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술적 수사일까, 아니면 진실이라고 믿는 신념을 털어놓는 것인가. 의문을 풀기 위해 김일성·김정일의 저작과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 주요 역사서 등 북한 내부 문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2012년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에 제출한 박사 학위논문에는 이런 의문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담았다.

    김성학씨는“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보호망에 자신을 가둠으로써 반제반미 투쟁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학씨는“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보호망에 자신을 가둠으로써 반제반미 투쟁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최근 출간된 '전갈의 절규: 북한의 대미 불신의 기원과 내면화'(선인)는 김씨가 북한 정권의 성립 전사(前史) 시기부터 부시 행정부까지의 대미(對美) 레토릭을 분석한 박사 논문에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 대한 관찰을 더해 쓴 책이다. 김씨는 북한을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공격적 본성을 지닌 전갈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런 공격성은 김일성이 '반제반미(反帝反美) 투쟁'을 정권 장악과 유지 수단으로 채택하면서 만들어졌고 김정일과 김정은이 이를 유지·강화하면서 북한에 벗어날 수 없는 구조화된 정치적 경로가 되고 말았다고 본다. 김씨는 "김일성 등 북한 최고 지도자조차도 그동안 자신들이 뱉어놓은 말에 얽매여 대미 불신을 거둬들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미 적개심은 '반제(反帝) 투쟁의 영웅'으로 신화화된 김일성 항일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형성됐다. 일본을 대신하여 남한을 점령한 미국을 몰아내는 것이 북한의 지상 과제로 제시됐다. 조국 해방을 위해 일으킨 6·25전쟁 실패의 책임을 남로당과 연안파·소련파에 떠넘겨 독재 체제를 구축한 김일성은 반미 역사의식을 국가·체제·정권 안보의 보루로 삼았다. 날조된 '미군의 신천 대학살' 선전 등을 통해 북한 주민이 갖게 된 미국에 대한 증오감은 북한의 대미 불신을 강화했다.

    김성학씨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미국 관련 발언이 놀랄 만큼 비슷하다고 말한다. 한·미 연합군의 팀스피리트 합동훈련에 대해 김일성은 1985년 '우리 공화국 북반부를 선제타격하기 위한 예비 전쟁이고 핵시험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김정일은 1993년 이를 그대로 이어받아 '우리 공화국 북반부를 불의에 선제타격하기 위한 예비 전쟁이고 핵시험 전쟁'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3년 3월 20일 조선중앙통신 역시 "미군이 핵 선제타격 훈련에 광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씨는 "미국에 대한 비난 레토릭은 발언 시점을 빼고 보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거의 동일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미 불신이 정책 실패로 연결된 대표적 사례가 제네바 합의의 붕괴다. 북한은 1994년 미국에서 경수로를 제공받는 대신에 핵무기를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을 믿을 수 없었던 북한은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이것이 발각되는 바람에 결국 제네바 합의는 파탄에 이르렀다. 김씨는 "북한이 미국을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네바 합의는 탄생과 동시에 붕괴가 예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과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성학씨는 타임지에서 주로 한반도 문제를 취재하고 있다. 2009년 6월 김정은의 후계 확정을 처음 보도한 타임지 기사 작성에 참여했던 그는 대미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동결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핵무기와 ICBM이 실전 배치되면 북한의 대남·대미 위협은 지금보다 훨씬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씨는 "북한의 변함없는 목표는 '미제(美帝)가 강점한 남한 해방'"이라며 "그동안 능력이 안돼서 못 했던 목표 달성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