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남편의 삶에서 가장 큰 사건"

    입력 : 2017.08.11 03:03

    [영화 '택시운전사'의 모델 독일 기자 故 힌츠페터 아내 來韓]

    9일 영어 자막 버전으로 영화 관람
    "조용하지만 강한 남편 모습 잘 그려… 살아서 함께 봤으면 좋았을텐데…"
    2003년 첫 訪韓, 이번이 8번째 "독일 분단 경험… 한국에 애착 커"

    위르겐 힌츠페터
    "남편이 살아서 이 영화를 함께 봤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감정이 북받쳤어요."

    6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의 실제 모델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작은 사진)의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80)가 10일 서울 논현동 카페에서 내한 간담회를 가졌다. 브람슈테트는 전날 영어 자막 버전으로 이 영화를 관람했다. 브람슈테트는 "외모는 물론이고 평소 동작은 조용하지만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는 모습까지 남편과 닮았다"면서 "영화를 본 뒤 감동과 흥분으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NDR 기자였던 힌츠페터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현장을 카메라로 취재한 뒤, 전 세계에 알려서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렸다. '택시운전사'에서는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55)이 힌츠페터 역을 연기했다.

    힌츠페터와 브람슈테트 부부는 독일 북부 라체부르크 초등학교의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동창이었다. 브람슈테트는 유년 시절의 남편에 대해 "영화처럼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다소 잘난 척하고 거만한 구석이 있었다"면서 웃었다. 이들은 독일 킬대학 의대에도 함께 다녔다. 하지만 힌츠페터는 의학 대신 저널리즘으로 진로를 돌리고 독일 공영방송에 들어갔다. 아내 브람슈테트는 의대를 마친 뒤 마취과 전문의가 됐다. 그는 "남편은 평생 사건 현장을 누볐고, 나는 수술실을 지켰다"고 말했다.

    남편 힌츠페터는 1969년 베트남 전쟁 취재 도중 부상을 입었고, 1980년에는 일본 도쿄 특파원으로 방한해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취재했다. 1986년에도 서울에서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다가 허리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브람슈테트는 "남편은 도쿄와 홍콩, 싱가포르까지 아시아 전역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지만 광주는 평생 그의 삶에서 중심적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의 모델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택시운전사’의 모델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쇼박스
    이들은 2002년 의사와 환자로 뒤늦게 재회했고 그해 결혼식을 올렸다. 브람슈테트가 다녔던 병원의 마지막 근무일에 남편 힌츠페터가 응급실에 환자로 실려왔던 것이다. 브람슈테트는 "처음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독일 밖의 다른 세상을 여행하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했다. 2003년 남편과 함께 처음 방한한 이후, 이번이 8번째 한국 방문이다. 영화 개봉 이후 남편의 치열한 취재 정신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높다고 한국 기자들이 전해주자, 브람슈테트는 잠시 말문을 멈추고 눈시울을 붉혔다.

    브람슈테트도 독일 분단 시절 이산가족으로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는 서독의 조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은 일자리를 찾아서 동독 지역으로 건너갔다가 동서독이 분단되면서 헤어지고 말았다. 그는 "분단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한국에 대해 더욱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의대에 진학한 뒤에도 브람슈테트는 공장 근로자와 야간 간병인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다. 동독 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부모님과는 1년에 서너 차례만 상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브람슈테트는 "분단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 북한처럼 독재자가 정권을 잡고 있고 언론 자유도 없이 거짓말과 위선 속에서 살아야 하는 공산주의 사회의 분위기를 너무나 잘 안다"면서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