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영화에 반해서… 대본집 사서 읽는 시대

    입력 : 2017.09.13 03:01

    인터넷서점 예술·대중문화 서적 10위권 내 절반 이상이 대본집

    '비밀의 숲' 등 골수팬 있는 작품… 흥행 히트작보다 시장성 있어
    20~30대 여성들이 주 구매층

    드라마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가 출판 시장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예술·대중문화 서적 9월 2주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는 드라마 대본·영화 각본집이 여섯 권 포함돼 있다. 드라마 '청춘시대' 시즌1 대본집 상·하권이 각각 2위와 4위, 일본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 이야기' 각본이 담긴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가 3위다. 5위는 김종관 감독의 영화 '더 테이블' 시나리오, 6위와 7위는 드라마 '비밀의 숲' 대본집 1·2권이 차지했다. 1위는 온라인 게임 사이퍼즈 원화집 '사이퍼즈 아트북'이다.

    예스24도 마찬가지. 9월 2주 예술 부문 베스트셀러 10위권의 절반이 드라마·영화 각본이다. 대본집 약진은 최근 1~2년 새의 새로운 현상.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연예술 분야 관련자들만 읽는 책이었지만 요즘은 일반 독자들로 타깃층을 넓히고 있다"고 했다.

    골수 팬이 움직인다

    대본이 출간되는 드라마·영화는 흥행 히트작보다는 골수 팬이 있는 작품. '비밀의 숲'은 최고 시청률 6.6%(닐슨코리아 제공)에 그쳤지만 한국 드라마의 전형성에 빠지지 않았다는 찬사를 받으며 탄탄한 팬층을 만들었다. '비밀의 숲'을 낸 북로그컴퍼니 김정민 대표는 "인터넷 서점에 서지 정보만 등록한 날에도 각 권 300부 넘게 주문이 들어왔다. 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했다. '비밀의 숲'은 출간 한 달 만에 1·2권 합쳐 2만부가량 팔렸다.

    알라딘 9월 2주 예술·대중문화 베스트셀러
    이경미 감독 영화 '비밀은 없다' 각본집은 지난 3월 알라딘 예약 판매 열흘 만에 한정판 1000권이 몽땅 팔렸다. 관객 수 25만명에 그친 이 영화가 출판 시장에서 빛을 볼 수 있었던 배경은 역시 '팬심(心)'. 각본집을 출간한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는 "이경미 감독 팬이라 영화가 흥행이 부진하니 부차적 매체로 기여해보자는 생각에 각본집을 냈는데 골수 팬들이 반응하면서 예상 외의 성과가 있었다"고 했다. 출판사 그책은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친절한 금자씨' '박쥐' 각본집을 연달아 출간했다. 정상준 대표는 "보통 각본 시장이 1000부 정도라고 하는데 '아가씨'는 1만5000부 찍었고 나머지 책들도 3000부가량 찍었다"고 했다. 영화 제작 과정을 담아 지난달 내놓은 '아가씨 아카입'도 4만3000원이라는 고가이지만 곧 3쇄를 찍는다.

    대본집 정독하는 '드라마 덕후'

    영화·드라마 대본집 판매 호조는 선진국에서처럼 국내 출판 시장에도 취향의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취향에 부합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지갑을 여는 골수 팬들이 대본까지 구입하며 드라마·영화를 재차 수용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소장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드라마 덕후(드라마 마니아)'들은 밑줄까지 쫙쫙 그어가며 대본집을 정독한다. 김정민 북로그컴퍼니 대표는 "'비밀의 숲' 주연 조승우는 대사를 입에 붙도록 조금씩 고쳐서 연기하는데, 드라마 팬들이 대사를 일일이 타이핑해 조승우 대사가 대본과 다른 부분까지 비교해가며 서로 공유하곤 한다"고 말했다.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대본집 구매자도 20~30대 여성 비율이 높다. 알라딘 예술담당 MD 최원호 과장은 "여성 시청자들은 '비밀의 숲'처럼 각본 완성도가 높고 대사가 정교하면서 등장인물들이 진취적이고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을 주목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