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부산 日영사관 앞에 징용 노동자상 세우겠다"

민노총이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운동에 들어갔다. 작년 말 이곳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지면서 한·일 정부가 갈등을 빚었는데,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또 다른 외교 마찰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민노총 부산본부는 18일 오전 일본영사관 앞에서 '일본의 강제징용 사죄·배상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와 부산 시민의 모금 운동과 서명 운동 등을 통해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70년 넘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강제징용 문제를 알리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겠다"고 주장했다.

민노총 부산본부는 지난 8·15 광복절 때 서울 용산역에 세운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형을 일본영사관 앞에 놓고 18일부터 100일간의 1일 시위에 들어갔다. 최근 구성된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를 통해 모금·서명 운동을 벌여 나가는 한편 소녀상 설립 1주년인 오는 12월 28일 노동자상 설립 선포대회를 갖고 내년 노동절(5월 1일)에 동상 제막식을 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엔 서울 용산역과 인천 부평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져 있다.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의 '평화의 소녀상' 옆에도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위는 다음 달에 경남과 제주에도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노총 부산본부가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하려는 일본영사관 앞은 지난해 연말 시민단체가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한 곳이다. 부산 동구청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소녀상을 철거했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되돌려주고, 소녀상 설치를 묵인했다. 이 사건은 일본 정부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9일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며 주한 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귀국시키며 항의의 뜻을 밝혔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외국 공관 앞에 논란이 되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친일파'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주한 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지난 4월 4일 한국에 돌려보내며 양국 갈등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 민노총이 중심이 되어 강제징용 노동자상까지 세울 경우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민노총 부산본부는 이날 "미국에 의한 전쟁 위기 조장, 무기 구입 강요에 이어 사드 배치 강행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더욱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적폐 정부는 미국의 강요 아래 '일본군위안부 야합'을 함으로써 전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등의 주장을 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주변국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노동단체인 민노총이 외교·역사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분란의 소지를 제공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영사관 앞 도로와 인도를 관리하는 부산 동구청은 노동자상 문제에 대해 부담감과 피로감을 토로한다. 법의 잣대로 보면 노동자상을 용인하기 어렵지만, 소녀상 때처럼 '여론몰이'를 하면 노동자상 건립을 막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동구의 한 관계자는 "힘없는 지자체로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정부가 소녀상이나 노동자상 건립에 명확한 입장을 밝혀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