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女人들, 화려한 축제의 장막을 열다

    입력 : 2017.10.13 03:02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女감독·배우 개막작 '유리정원', 시적 정취 그윽… 흐름은 뚝 끊겨
    추모와 긴장감이 공존한 첫 幕

    부산국제영화제 로고 이미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은 여성 영화인들이 열었다. 12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막이 오른 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유리정원'. 2015년 영화 '마돈나'로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던 신수원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고, 배우 문근영씨가 장애가 있는 여성 과학도 역을 연기했다.

    올해 폐막작도 대만 여성 감독 실비아 창(張艾嘉)의 '상애상친(相愛相親)'이다. 실비아 창은 1980년대 홍콩 영화 '최가박당'에서 왈가닥 여형사 역으로 사랑받았던 배우 출신 감독. 여성 감독 작품이 개·폐막작으로 나란히 선정된 건 1996년 영화제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여성 감독·주연의 개막작 '유리정원'

    12일 개막작 '유리정원'의 시사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장에도 신수원 감독과 배우 문근영, 진행을 맡은 강수연 집행위원장까지 여성 영화인들이 중심에 섰다. '명왕성'(2013)과 '마돈나'를 연출한 신 감독은 "영화 데뷔 이전 소설을 쓸 때부터 오랫동안 구상해온 작품"이라며 "꿈과 이상을 지니고 있지만 세상에 상처 입고 짓밟힌 여성이 다른 존재로 환생한다는 주제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근영은 2015년 영화 '사도'에서 '혜경궁 홍씨' 역을 맡은 이후 2년 만의 영화 복귀작. 강 위원장은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받았던 문근영씨가 이번 영화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줘 놀랐다"고 했다.

     

    12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배우 장동건과 소녀시대 멤버 윤아의 사회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올해 영화제에는 세계 75국에서 298편의 작품이 참가한다.
    12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배우 장동건과 소녀시대 멤버 윤아의 사회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올해 영화제에는 세계 75국에서 298편의 작품이 참가한다. /김종호 기자
    '유리정원'은 12세 때 한쪽 다리의 성장이 멈추는 바람에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생명공학 연구원 '재연'(문근영)이 소설가 '지훈'(김태훈)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재연은 햇빛과 물만으로 산소를 만드는 식물의 광합성을 동물 세포에 이식하면 장애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연구에 매진한다. 지훈은 그런 재연을 남몰래 훔쳐보면서 자신의 소설에 담는다.

    영화는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는 표절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명왕성' 같은 전작(前作)부터 신 감독이 천착한 배척과 질시, 따돌림 같은 주제도 부각했다. 헨델의 아리아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이여(Ombra mai fu)'가 목관 앙상블로 은은하게 흐르는 가운데, 순수와 생명을 상징하는 녹음(綠陰)이 두드러진다. 다만 시적 정취를 강조하다 보니 서사적 흐름이 툭툭 끊기는 점은 아쉬웠다.

    추모와 긴장이 공존하는 영화제

    올해 영화제에선 갈매기와 파도 등 부산을 상징하는 로고가 나온 뒤 곧바로 '김지석을 추모하며'라는 자막이 스크린에 뜬다.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 출장 도중 심장마비로 별세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12일 영화제 개막식에서도 고인의 추모 영상이 흐르는 가운데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장례식이나 추모식에서 연주하는 바흐의 칸타타 '하느님의 세상이 최상의 세상이로다'를 피아노 독주곡으로 연주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의 주연을 맡은 문근영.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의 주연을 맡은 문근영. /리틀빅픽처스
    오는 21일까지 열리는 올해 영화제에는 세계에서 처음 상영(월드 프리미어)하는 100편을 포함해 세계 75국에서 298편이 참가한다. 아시아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 신인을 발굴하는 경쟁 부문 '뉴 커런츠'에서는 '플래툰' 등을 연출한 미국 감독 올리버 스톤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재능 있는 젊은 아시아 영화인을 발굴하기 위해 열리는 아시아 영화 아카데미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교장을 맡았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관련 다큐 영화 '다이빙벨' 상영 논란으로 영화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진 이후, 감독조합·촬영감독조합·영화산업노조 등 일부 단체의 영화제 거부 방침은 변함이 없다. '구원투수'로 영입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위원장도 올해 영화제가 끝난 뒤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영화제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