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이사 준비

    입력 : 2017.11.06 09:49

    하루 종일 집안을 서성인다. 들었다 놓았다 반복한다. 한숨을 쉰다. 구입할 때는 쉽고 즐거웠을텐데 버리기가 이렇게 어려운줄 몰랐다.

    다음 달에 40평에서 24평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물건 줄이는 것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덩치 큰 살림만 없애면 되는 줄 알았다. 가죽 쇼파는 아래 층에 주기로 했다. 몇날 며칠 아까워하다 내린 졀정이다. 평생 끼고 살았던 피아노는 중고상한테 팔기로 했다. 내 젊은 시절의 추억이 배어있는, 그래서 보내기 싫은 물건 중 첫 번째다.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내일 물건을 보러 온다 했으니 얼마를 받던 넘길 작정이다.

    A4용지에 이사 갈 집 살림배치 구조를 그려봤다. 우선 주방의 크기가 1/3 이다. 꼭 필요한 것들만 고른다. 커다란 접시도 내놓고 쎄트로 장만한 그릇들을 정리한다. 수저통 비우기, 후라이팬 줄이기, 냄비 줄이기, 프라스틱 용기 버리기 등등. 떡케잌 배우면서 구입한 찜기와 빵 배우면서 구입한 추억어린 도구들을 내 놓는다.

    사진=조선일보DB

    안방 장롱을 열어보니 이불이 꽉차있다. 아무리 보아도 버릴 이불이 없다. 이불에 대한 욕심이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나중에 다시 보자하며 옷 칸을 열어본다. 우선 쉬운 양말부터 시작하자. 웬 양말이 이리도 많은지. 주로 쎄일 코너에서 한 죽씩 산 것 들이다. 싸서 사고, 이뻐서 사고, 남이 사니깐 군중심리에 몰려 사고, 모든 물건들이 내가 꼭 필요해서 구입한 것 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보리차 끓여 먹던 커다란 스텐 주전자, 곱게 쌀가루 내리는 체, 떡 찌는 냄비와 대나무 찜기는 내놓았다가 방송 홈쇼핑에서 만두 찌는 모습을 보고 다시 들여 놓았다. 이렇게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다 이런거야, 그래도 내 물건이니깐 변덕부려도 괜찮아.” 나를  위로한다.

    책장이 세 개. 이곳에 꽂혀 있는 책들을 골라내는 것도 일이다. 어디에 가치를 두고 골라야 할지 막막하다. 한 권씩 보면서 고르니 다 가져가야 할 거 같다. 안되겠다. 책장 정리도 몇 일 걸리겠지 싶다.

    큰 거실 한 켠에 박스들이 쌓여간다. 버릴 물건과 기증할 물건들로 구분해 놓았다.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추억이 서린 물건들을 내놓는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차를 마시며 쉬기를 반복한다. 버리는 것이 참 어렵다.

    다음날 중고 피아노 회사 직원이 왔다. 덩치 큰 피아노를 처분하기 위해서다. 처분이라는 단어를 쓰니 피아노한테 미안하다. 피아노가 집에서 빠져 나가고 텅 빈 방에 들어오니 갑자기 눈물이 난다. 마치 내 생애 한 무대가 끝난 거 같은 기분이다.  피아노와 함께 했던 영광된 시간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간다.

    창문 밖을 내려다본다. “얘야, 잘 가!” 어찌나 서운한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래 이사 가면 조그마한 디지털피아노 하나 사자.” 마음을 달래본다.

    몇 일이 지나자 이제 무엇을 버려야할지 판단이 안선다. 도서관에 가서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을 빌려왔다. 읽으면 버려야 될 것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그렇게 모은 물건들이 사과 박스 10개 분량이다. 오늘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물건들을 소아암 환자 돕는 모임에 기부를 했다.

    버리기 아까운 그릇들, 손주가 쓰던 새것 같은 학용품들, 구두, 옷 등. 버리자니 아깝고 그들마다 추억이 있는 물건인지라 골라내는 일이 쉽지 않다. 이렇게 이사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