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 늘렸더니 값 폭락, 갈아엎기… 배추의 악순환

    입력 : 2017.11.13 23:39

    [가을배추 전년비 30%나 증가]

    농민 "수확하면 할수록 손해"… 홍성서만 약12만평 갈아엎기로
    농협 "생산안정제 늘리겠다"

    유통업계선 '김장 특별기획전'

    "속도 꽉 차고 무른 것 하나 없는데…. 아프네 아파."

    13일 오후 충남 홍성군 은하면 배추밭에서 농민 최진석(64)씨가 밭으로 들어오는 트랙터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트랙터가 진녹색 배추밭을 가르고 지나가자 하얗게 배추가 흐트러졌다. 트랙터가 1320㎡(약 400평) 밭을 갈아엎는 데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인근 배추밭도 사정은 비슷했다. 최씨는 "지금 시세로 1포기에 600원 정도 받는데, 버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배추 모종을 키워서 밭에 심는 데 들어간 비용은 포기당 500원 정도이고 수확·운송 비용은 약 400원이다. 반면 보험 성격의 농협 수급 안정기금에 가입한 최씨는 배추를 버리면 포기당 약 300원을 지원받는다. 갈아엎는 것이 포기당 100원 정도 손해가 적다. 농협에 따르면 홍성군에서만 갈아엎을 예정인 배추밭이 39만6700㎡(약 12만평)에 달한다.

    13일 충남 홍성군 은하면의 한 배추밭에서 농민이 수확을 앞둔 배추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애써 키운 배추를… ‐ 13일 충남 홍성군 은하면의 한 배추밭에서 농민이 수확을 앞둔 배추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지난해보다 배추 재배 면적이 늘고 수확량이 크게 늘면서 가격이 폭락하자, 농민들은“배추를 수확해 파는 비용이 더 든다”며 배추 수확을 포기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여름배추 폭등에 재배 면적 늘렸더니 가을배추 폭락

    가을배추가 수요를 초과하면서 값이 폭락하고 있다. 9월 초에 심은 가을배추는 약 60~70일간 자란 요즘 수확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가을배추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30% 증가한 147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배 면적이 1만3674㏊로, 지난해보다 20%나 늘어난 것이 주요 이유다. 기온과 일교차가 적정했고, 태풍 한 번 없었던 탓에 단위면적당 생산량도 9% 늘었다. 이에 따라 이달 가락농수산물시장의 배추 평균 도매가는 포기당 1484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4% 폭락했다. 배추는 봄, 여름(고랭지), 가을, 겨울(월동용) 네 차례 재배한다. 지난 9월 수확된 여름배추 가격은 폭등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9월 4일 배추 한 포기 평균 소비자가는 7125원으로 평년가(4510원)보다 58% 높았다. 여름배추가 폭등했던 9월 초, 농가는 가을배추를 앞다퉈 심었다.

    최병옥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배추 가격이 비싸다는 소식을 접한 농가는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재배 면적을 늘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국 다음 수확 때는 물량이 많아져 가격이 떨어지고, 급기야 멀쩡한 배추를 갈아엎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전북 고창에서 가을배추 수확을 준비 중인 김모(71)씨는 "여름배추 가격을 보고 재배 면적을 10% 늘렸다"며 "주변 이웃도 다 재배를 늘리는데 나만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볼 것 같았다"고 했다.

    김장철 배추 가격 동향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 정보력이 부족하고 고령인 산지 농민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산지 가격 등락 원인을 잘 알고 있는 중간상인은 배추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측될 때 농가와 '밭떼기 거래'를 한다. 밭떼기 거래란 농가에서 배추 모를 밭에 옮겨 심기 전에 미리 밭째로 배추를 사는 구매 방식을 말한다. 이 때문에 배추 값이 폭등해도 농가에선 '큰돈'을 벌지 못한다. 반대로 가격이 폭락할 조짐이 있을 때 중간상인들은 밭떼기 계약을 맺지 않거나, 계약을 체결했어도 파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농협 생산안정제 확대 계획

    농협은 '배추 생산안정제 사업' 등을 확대해 가격 변동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배추 생산안정제 사업이란 정부·지자체·농협·농민이 일정 비율 돈을 내 '수급 안정기금'을 조성해 가격 폭락으로 손실을 입는 농가를 지원하는 제도다.

    반면 소비자는 싸게 김장을 담글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마트는 16일부터 22일까지 김장 배추를 비롯해 각종 김장 재료를 할인 판매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계약 재배를 통해 배추를 평균 도매가보다도 15% 싸게 판다"고 했다. 롯데마트는 16~22일 수도권·충청권 점포, 23~29일 영호남권 점포에서 '김장 특별 기획전'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