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이래도 되나

    입력 : 2017.11.14 10:13

    이래도 되나?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며 내내 든 생각이었다. 한편에서는 생존 배낭을 꾸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휴가철에서 명절로 이어지면서 여행객들로 공항과 역이 넘쳐나고 있었다. 또 한편에서는 금방이라도 대재앙이 닥칠 듯 심각한 표정이 보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파안대소하는 위정자들의 얼굴이 신문지면에 빈번히 나타나서 헷갈리기도 했다. 그래, 이럴 때일수록 평상시와 다름없어야겠지. 그래서 부러 활짝 웃어 뵈는 건지도 몰라.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은 여전했어도, 사람은 편하고 좋은 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인가 보다. 농담 반 진담 반 일지언정 여느 때라면 듣지 못했을 “나 없는 동안 나라 잘 지키고 있으라”며 떠난 지인도 있었지만, 나 또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여행을 갔으니 말이다. 아들의 ‘직딩’ 1년과 생일 축하를 겸해 “엄마가 해외로 쏘겠다”고 1년 전에 한 약속인지라 이행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대신 비행기를 타는 데서 국내로, 국내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을 여행했다.

    다름 아닌 아들의 군복무지였다. 누구는 전역 후 아예 눈길조차 주기 싫은 곳이라는데, 국내로 가면 어떨까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들이 먼저 제안한 곳이었다. 사실 아들에게 내심 미안한 곳이기도 했다. 입대할 때 부모로서 바래다줬을 뿐 군복무 기간 중 한 번도 면회를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내 직장 일이 바쁜데다, 서울에서는 멀게 느껴지는 거제도여서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다가 제대를 맞이하고 말았다.


    추억을 더듬는 여행

    우제봉.
    해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우제봉이라는 산꼭대기에서 아들은 밤새도록 열상감시장비 TOD로 남해안을 지켜야 했다. 올빼미 스타일이라 잠을 안 자는 건 견딜만했으나 무거운 장비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다고 했다. 덕분에 장딴지와 허벅지가 무쇠처럼 단단해졌다고 휴가 올 때마다 자랑했던 게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전우들과도 화기애애하게 지내면서 중졸의 한 후임병에겐 고졸 검정고시 준비를 도와주기도 했단다. 이따금 휴가 때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검정고시 원서부터 대신 접수한 후 집에 오곤 했다.

    아들은 군에서의 좋은 추억에다, 임무 수행 차 여기저기 처소를 옮겨 다니긴 했어도 본 게 거의 없다는 거제도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 했다. 내게도 의미 있는 곳이었다. 거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통영에는 근래에도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해금강은 대학 졸업여행으로 찾은 이래 처음이니 나는 30여 년 전, 아들은 8년 전 추억을 더듬는 여행인 셈이었다. 잘 먹고 잘 자며 3박 4일의 느긋한 일정으로 거제의 명소들을 둘러봤지만, 우리에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우제봉이었다.

    해금강 호텔.
    유명한 ‘바람의 언덕’에서 속이 뻥 뚫리도록 바람 맞이를 하고, 신선대를 지나 해금강 주차장에서 해금강호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졸업여행 때 남녀 학우들과 묵었던 바로 그 호텔이지 않은가! 하얀 3층 건물과 그 위에 걸린 간판까지 그대로였다. 하지만 영업을 중지했는지 너른 마당에 차 한 대,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겠지. 이제는 변신할 때도 되었겠지. 그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데…. 그래도 옛 모습을 아직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호텔 앞마당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며 외쳤던 “앗싸!” 함성이 귀에 쟁쟁했다.


    밤을 밝혀 나라를 지키는 이들

    여기서 숲길로 접어들어 8백여 미터 정도 걸어 오르면 우제봉이다. 관광객들을 위한 전망대에 서니 건너 꼭대기에 초소가 얹혀있는 게 보였다. 아들이 밤을 지새웠던 곳이다. “스물 갓 지나 저기 짱 박혔을 때는 저길 이렇게 여유롭게 바라볼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제 머잖아 서른이 되네요.” 20대를 정리하고 있는 듯 아들의 표정이 묘했다. “아그(아기)들이 저녁에나 올라오기 때문에” 현역병들을 못 봐 아쉽다는 눈치였다. 여행의 즐거움도 밤을 밝혀 나라를 지키는 이들이 있어 가능하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가 차올랐다.

    해금강.
    아들의 20대도, 엄마의 20대도 기억 속에 잠기고 있었다. 동쪽으로 해금강이 눈에 들어왔다. 졸업여행 때 쪽배를 타고 돌아보며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했던 곳이다. 통통한 양 볼이 볼터치를 바르지 않아도 발그레했던 시절이었다. 투명하고 짙푸른 물속에서 빨간 불가사리를 보고 얼마나 탄성을 질렀던가. 아들은 아들대로 나는 나대로 자꾸만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나오면 해금강 옆 돛단배 모양의 돛단섬이며 멀리 남서쪽으로 다포도, 대병대도, 가장 크고 높은 매물도, 뒤에 소매물도가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천장산이 봉긋했다.

    아들과 여행을 다녀왔다니까 친구는 “아들이 이제 돈 번다고 한턱 썼는가 보네”로 안다. “아니, 내가 모셨지. 여자 친구가 있는데 엄마랑 가주는 것만도 감지덕지인 거지 뭐. 그것도 머잖아 결혼하면 끝이겠지만 서두. 그러니 내년엔 비행기로 좀 먼 데 가볼까도 싶은데. 이제부터 돈 모아야겠어.” 그때는 정말 이래도 되나? 마음에 한 점 어두운 구름 없이 즐겁게 다녀오면 좋겠다. 나라가 우선 평화롭고도 강해야 어디를 가든 어깨를 펴고 다닐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