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11월의 어느 멋진 날에

    입력 : 2017.11.24 10:17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사실 조지 버나드 쇼의 이 묘비명은 “오래 살다 보면 죽을 줄 알았지” 정도로 옮기는 게 원문에 더 가깝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그는 결코 우물쭈물하다 간 사람이 아니다.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로서 노벨상과 오스카상 둘 다를 거머쥔 유일한 작가였다. 탁월한 식견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영국 노동당을 있게 한 정치사상가요, 인기비평가, 명연설가, 런던정경대 공동설립자이기도 했다. 더구나 94세에 세상을 떴으니 “오래 살다 보면…”이 더 맞지 싶다.

    시립승화원의 수목장.
    그럼에도 “우물쭈물…”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며칠 전 경기도 파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수많은 묘비를 바라보면서였다. 가톨릭에서는 죽은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한다는 위령성월, 낙엽은 흩날리고 올해도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아 왠지 쓸쓸한 11월. 한 해 두 해 나이는 들어가건만 나는 여전히 우물쭈물 살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게 됐다. 검은 상복을 입은 내 딸과 아들 또래의 상제가 붉어진 눈으로 어머니 영정을 들고 지나가고 있었다. 목례를 보내며 새삼 든 생각은 이 세상에서 확실한 단 하나, 나도 언젠가 저렇듯 가리란 것.


    공동묘지 수행

    며칠 전 우연히 자연장에 대해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서 친자연적 장례문화 확산을 위해 마련한 특강에서였다. 수목장에 관심은 있었으나 사전 신청자만 가능하대서 발길을 돌리려는데,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 빠지겠다는 분이 생겨 대타로 듣게 됐다. 앉아있기만 하면 될 걸 왜 그러나 했더니, 강의 후 파주 용미리의 자연장지까지 가본다는 것이었다. 열두 달 중 특히 11월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도 한 번쯤 가볼 만한 곳, 온갖 사념을 사라지게 할 곳이었다. 싯다르타는 공동묘지에서 수행했다지 않는가.

    이미 우리의 장례문화는 화장으로 바뀐 듯하다. 20년 전에는 사망자 5명 가운데 1명꼴로 화장했으나 요즘엔 5명 중 4명이라는 통계만 보더라도 이제 보편적인 장사방법이 됐다. 문제는 봉안시설이라고 한다. 묘지가 늘어나지 않도록 화장과 함께 권장됐으나 묘지보다 더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되는 석돌이 자연환경을 영구 훼손하고, 화려하거나 지나친 시설은 자원낭비에다 위화감마저 일으킨다고 특강 강사는 지적했다. 그 대안으로 근래 도입된 게 자연장인데, 묻는 곳에 따라 잔디형과 화초형, 수목형으로 나눠진다.

    승화원을 안내하고 설명해준 관리인 말로는 수목장이 굉장히 선호돼서 현재 여유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성된 정원에 여럿을 모시고 추모비를 세운 정원형이 눈에 많이 뜨였다. 이름을 다 새겨넣어야 하기 때문에 아직 비는 세우지 않고 구덩이만 파놓은 곳도 더러 있었다. 다가가 들여다보니 골분을 흙과 섞어 넣게 되는 구덩이는 고작 2리터 남짓한 물통 하나 들어가면 족할 정도였다. 그런 걸 넓은 집, 넓은 땅, 큰 차, 큰돈을 가지려고 그토록 애쓰며 살다니…. 아등바등할 때, 근심 걱정거리가 있을 때 한번 와 봐야 할 이유다.

    골분이 흙과 섞여 들어갈 구덩이.

    3년째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관리인의 느낌은 무얼까 물어봤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지 하는 마음이 부쩍 들어서 매주 찾아뵙는다”는 대답이었다. 좋은 일일수록 진작 알고 실천하며 살면 좋으련만, 지나서야 깨닫는 건 나만의 어리석음일까.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두어 선배들이 그래서 나는 부럽다. 어떤 분은 “일흔이 넘으니까 친구들끼리 모이면 자기 장례에 대해 주저 없이 얘기 나눈다”며 당신의 장례식에서는 장송곡 대신 람바다곡이 흘러나오기를 원한다. 아예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고 싶다는 분도 있다.


    물처럼 바람처럼

    일전에 독서모임 후 몇몇과 ‘사막의 여왕’이란 영화를 감상했다. 노트북으로 봤던 영화였지만, 주연 여배우 니콜 키드먼의 강렬한 매력과 와이드 스크린에서 펼쳐진 황홀한 사막은 다시 봐도 좋았다. 영화에서 그녀는 연인과 오래된 돌에 옛 문자로 파여진 시 한 구절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읽는다. “…마침 거둔 것은 다음 한 마디. 나, 물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노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와 끝 부분이 흡사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을 물과 바람에 견줘보는 건 비슷한가 보다. 니콜 키드먼이 읽은 시 전체가 궁금해 찾아봤다. 이슬람의 멋진 시,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였다.

    세속의 영화 위해 한숨짓는 이, 예언자의 천국 바라 한숨짓는 이,
    귀한 것은 현금이니 외상약속 사양하세 먼 곳의 북소리에 귀 기울여 무엇하리.

    젊은 날 성현들을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높은 말씀 들어봤건만
    언제나 같은 문을 출입했을 뿐 나 자신 깨우친 것 하나 없었네.

    성현들과 더불어 지혜를 씨 뿌리고 내 손수 공들여 가꾸어 보았지만
    마침 거둔 것은 다음 한 마디 나, 물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노라.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승화원의 수목을 건들며 마지막 대목을 자꾸 흔들었다. 아직 남은 잎사귀들과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눈 부신 춤을 췄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란 노래 제목을 11월로 바꿔도 좋을 날이었다. 노래처럼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같은 네가 있지도 않고, 부유함도, 조그만 권력조차 없을지라도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지 못할 게 뭐겠는가. 종국에는 그렇게 작은 곳에서 흙과 섞여 사라질 인생인데. ‘11월의 어느 멋진 날에’ 머리와 가슴 가득 바람을 느끼며 되뇌었다.